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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

"엄마가 뭐라 그랬게?"

파리의 한 한국식당에 식구가 함께 외식을 나갔을 때였다. 식당 입구에서 우리를 한국어로 맞아 자리로 인도하자 애가 아빠한테 "Qu'est-ce que maman a dit?"(엄마가 뭐라 그랬어?) 하는거다. 애아빠가 '엄마가 뭐라 했는지 네가 나한테 통역을 해줘야지. 넌 한국말을 알잖아.' 난 그때 종업원과 나의 대화를 아이가 이해하지 못했는 줄 알았다.

 

시어머님이 올라오셔서 주말에 차를 렌트해 가까운 곳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아이와 시어머님은 뒷자석에 탔다. 아이와 내가 한국말로 얘기를 하고 난 뒤, 아이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Qu'est-ce que maman a dit?"(엄마가 뭐라 그랬어?) '아니, 뻔히 알아듣고 대답까지 한 녀석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람?'하고 있는데, 아이가이어서 "Qu'est-ce que j'ai dit?"(내가 뭐라 그랬어?) 나는 그제서야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감을 잡았다! '엄마가 뭐라 그랬어?'가 아니라 '엄마가 뭐라 그랬게?'라고 떠본 거였단 것을! 아이는 프랑스인들이 우리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그 사실을 불편해 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키득거리며 재밌어 하고 있는거다!!!

 

한국에서 아는 후배가 여행나와서 아이와 함께 봤는데, '얘가 한국말을 할 줄 알까?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수준일까?' 싶어했다. 아이의 '안녕하세요'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르더니우리 아이랑 조금 놀아보고는 한국에 있는 또래의 한국 아이들만큼이나 한국말을 잘한다면서 너무 신기해하고 놀라했다. "얘 불어도 이만큼 잘 해요?" "불어는 한국말보다 더 잘하지. 나만 빼고 주변에서 들리는게 다 불어니까."

 

아이가 한국에서 온 손님한테 우리말로 노래도 해주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실을 보니 나도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는 지 모른다.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도 얘기를 듣고는 매우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언니, 애가 한국말을 너무 잘 해. 너무 잘 키웠어요!'라는 칭찬에 육아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더군. 봐주는 사람없이 혼자 애 키우며 힘들어 죽을라카면서도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전업주부로 꾹 눌러앉은 지난 3년에 대해 이만하면 눈물나게 대만족이다. 

 

지난 밤, 아이를 재우며 말했다. "난 네가 자랑스러워. 딸아, 멀리 멀리 한국에 가면 말이지.. 친척이 굉장히 많아. 엄마의 엄마랑 아빠, 그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식구가 많거든.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큰이모할머니, 또 큰이모할머니, 큰할아버지, 등등등.... 아빠 친척의 3배, 4배가 넘어. 한국에 가면, 네가 아빠랑 하는 불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꺼야. 그들은 다 한국말을 쓴단다."

 

참고로, 저희 아이는 보름 후면 만 세 살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