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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Grossesse 임신

10월 24일: 하혈기가 비치다

임신 몇 주인지를 계산하는 방법은 마지막 월경이 시작한 첫날부터라고 한다.

임신 6주~8주가 착상이 가장 불안한 시기라며 절대 안정하라고 의사가 충고한다.

 

"출국 예정일이 다음 주 수요일(26일)인데, 장기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해도 될까요?"

"비행기 안에서는 10시간을 가든 12시간을 가든 사실 문제가 없구요. 비행 전후에 짐을 싸고 공항까지 움직이고 공항에서 집에까지 가고.. 하는게 피곤한거죠. 출국하셔도 괜찮습니다."

 

임신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시댁부모와 신랑을 모시고 서울과 지방으로 돌아다니는 그 강행군을 하지 않았을텐데.. 코피까지 흘려가며 빨빨댔던 지난 1주일을 회상하면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생각뿐. 크~ 근데 사실 그때는 코피는 흘렸을 지언정 하혈은 하지 않았는데, 의사를 보고나온 다음 날, 하혈기가 보였다.

 

"지금이 가장 유산(!)이 잘 되는 시기이니 여행을 연기하라"며 부모님과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 만류하는 판국에 더구나 하혈기가 보이니 내 마음도 흔들린다. 엄마 앞에서 '하혈'의 '하'만 나와도 출국절대 금지령을 내릴 것이 뻔하겠기에 엄마한테는 함구하고 사촌언니에게 전화로 비밀문의를 했다. 그 의사가 월요일에나 다시 오니 월요일 아침에 의사를 보고, 집밖에 나가지말고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명령'에 가까운 조언이 떨어진다.

 

월요일 아침,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에 다시 갔다. 의사의 긍정적인 판단을 엄마가 직접 들으면 안심을 할 것이고, 부정적인 판단이 나오면 내가 여행계획을 연기하는거다.

 

"아니, 낼모레 출국하실 분이 왜 다시 오셨어요?"

기억력 참 좋은 의사다. 진료대에 다시 누웠다.

 

"음.. 아이 때문에 하는 하혈은 아니구요. 폴립이 있군요. 뭔지는 나중에 설명해드릴께요. 자, 스크린을 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추모양의 검은 물방울무늬였던 아기집이 슬슬 타원형으로 변하고 있었고, 그 안에 이제 강낭콩만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리와 몸통이 만들어졌고, 팔다리가 돌출하기 시작했다. 불빛처럼 깜빡깜빡거렸던 심장은 몸통의 1/3 상단부에서 콩당콩당 뛰고 있는게 보였다.

 

"이제 9mm로 자랐네요. 심장박동수도 정상입니다."

구미리... 나흘동안 7mm 컸다. 하나의 불빛에서 강낭콩만한게. 그 나흘간 아기가 자란게 신기했다.

 

"폴립이란 (사진을 보여주며) 자궁 밖, 질 안에 혹처럼 돌출된 건데 많이 피곤하거나 성관계 후에  출혈이 생길 수가 있어요. 보통 임신 전에는 모르고 있다가 임신 후에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유는 임신을 하면 자궁에 많은 피가 몰리기 때문입니다. 심각한건 아니구요. 임신 10-12주에 떼내고 지혈을 하면 간단하게 처리가 되는데, 나라마다 달라서 우리나라처럼 폴립을 떼는 경우가 있고, 시술을 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나라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엄마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안 자상한 여의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하혈이 자궁에서 발생한게 아니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구요. 하지만 언제든 출혈이 보이면 바로 산부인과를 찾아가시는게 바람직합니다. 의사의 소견으로서는 비행기를 타셔도 되구요. 다만, 제 여동생이라면 몇 주 더 있다가.. 10주 지나서 폴립 떼고 안전하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네요."

 

"여행 중에서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하혈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응급처치약은 없을까요?"

 

"하혈에 쓰는 약이 호르몬제라서 함부로 처치를 할 수가 없구요. 무엇보다 지금 출혈이 태반에서 발생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처방을 할 수가 없네요."

 

간단명료, 솔직+속시원한 의사의 소견에 엄마는 드디어 마음을 놓고 임신한 딸을 출국시키기로 하셨다. 

 

지난 번에는 초음파만 보고 3만원이 들었는데, 이날 진료비는 초음파 사진 3만원에 폴립 진료비인 듯 2만원이 추가되어 총 5만 얼마를 냈다. 보험이 있든 없든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산부인과 진료비, 정말 비싸다. 이 돈을 매달 내야만 한다는거지? 프랑스에서는 산부인과 보험처리가 어떻게 될런지.. 11월 2일, 임신을 둘러싼 프랑스 의사의 진단이 기다려진다. 신랑아, 기다려라. 아이와 함께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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