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의 사랑에 비해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다른 점은 '상대를 나로부터 떠나 살 수 있게 하는데 목적성을 둔다'라고 어느 심리학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아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유아든 청소년이든 자녀교육의 제1의 원칙은 자율성을 키우는데 있다. 부모가 뭐든지 챙겨주고, 먹여주고, 물질적으로 대주는 것을 '사랑'으로 여기는 부모들이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성인이 되어도 결국은 부모든 그 어느 누구든 누군가 옆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방치해버리는 꼴이 되버리고 만다.
지난 번 '배변훈련의 적절한 시기'에 이어 오늘은 배변훈련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한다. 우리 아이는 34개월에 배변훈련을 시작했는데, 만 1살 때부터 배변훈련을 했다는 한국엄마들의 사례는 '아니, 여태 왜 안 시켰어?'하며 나로 하여금 마치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있는 엄마인 양 무력감과 조바심을 갖게 만들었고, 만 2살에 대소변을 가렸다는 프랑스 엄마들은 나를 조바심이나 무력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애 덩지가 또래에 비해 컸던 터라 같은 나이에 덩지 작은 아이들이 기저귀 떼고 뛰어가는 걸 보면 '얘도 기저귀 떼야되는데...'하는 부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때(!)가 되면 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이런 저런 체험담을 들었더랬다.
배변훈련에 관한 육아전문가 지나 포드에 의하면,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더라도 스스로 바지를 벗고 입지 못하거나, 낮잠 자는 동안 오줌을 싼다면 배변훈련이 된 아이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실제로 만 1살에, 만 2살에 똥오줌을 가리지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엄마들은 내게 말하길 아이들이 만 3살이 되던 그때까지도 엄마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한다거나 (수저를 들고 혼자 밥 먹는 훈련은 만 12개월경부터, 즉 배변훈련이 되기 전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팔과 손을 뇌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시하는 신경근육의 발달은 괄약근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전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배변훈련을 한 지 1년이 훨씬 지나도록 화장실에서 엄마에게 바지를 벗기고 입혀달라고 한다거나 낮잠 잘 때 꼭 오줌을 싸서 기저귀를 채운다거나, 배변훈련이 된 이후로 (역시 그후로도 18개월이 지나도록) 큰 변기에 앉지 않고 유아변기에 앉아서 일을 본다고 했다. 지나 포드에 의하면 이들 케이스 모두 다 '배변훈련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배변훈련이 완전히 된 아이는 대소변이 마려울 때, 말로 표현하고, 화장실에 가서 큰 변기에 (처음 6개월간은 유아변기에) 올라가 일을 보고, 내려와서 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오는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아이다. 대소변에 관해서는 -엄마 아빠처럼-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자긍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배변훈련을 언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배변훈련시기를 얼마나 잘 마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변훈련을 일찍하면 엄마가 손이 덜가서 좋고, 다른 엄마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좋겠지만 아이가 배변훈련 시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아이는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 채 '엄마가 벗겨 주고 입혀주는대로' 오줌을 쌀 뿐이다. 아이가 대소변의 필요를 느낄 때,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 갈 시기를 결정하고, 아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입으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을 '이제 나 혼자 할 수 있어'라고 자긍심을 갖는 것이 배변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때문에배변훈련시기를 제대로 잘 넘어가지 못한 경우, 몇 개월이든 몇 년 후든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지나 포드는 경고한다.
우리 아이 배변훈련은 사실 만 2살이 되었을 때 시작했는데, 3주만에 접었다. 그애도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나 역시도 준비가 안 됐다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아이의 경우, 신체적으로는 준비가 되었지만 아이의 언어발달이 진행되고 있던 중이어서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거다. 일반적으로 국제커플의 경우,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늦어서 만 4살에서야 처음으로 말을 했다는 사례도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비하면 참 이르게도 1개국어를 하는 아이들과 같은 시기에 말을 시작했었다. 그것도 2개국어로. 만 2살이 되었을 때, 아이의 언어발달이 현저하게 발달했다. 특히 불어가 하루가 다르게 느는데, 아이는한국어와 불어를 동시에 발달시키느라 항문근육에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거다! 유아들은 단순하고 또 집중성이 강해서 한 가지를 익힐 때는 다른 것을 함께 하지 못한다. 눈물을 머금고 배변훈련을 접었다. 사실 그 눈물은 엄마의 자존심이 '실패'라고 여긴 탓이지 아이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였다.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던 어느날, '팬티 입어볼래?' 했더니 순순히 응하더라. 기저귀를 벗겨내고 팬티를 입힐 찰라, 아이가 오줌을 몇 방울 바닥에 똑똑 흘리는데 계속 흐르는게 아니라 그걸 참더니 화장실로 디립다 뛰어가더라는 말이다! 그걸보고 '아, 이제 얘가 배변훈련할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며칠 동안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쉬야는 그렇게 첫날부터 수월하게 되었고, 응가는 계속 팬티에 싸더라. 그건 순전히 심리적인 원인에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건 다음에 언제 얘기하고.. 팬티와 바지, 똥빨래를 해대고, 때로는 (길)바닥에 떨어지는 똥덩이를 훔치며 살던 두 달간의 스트레스란... 으으윽! 나를 죽여줘~~~
36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는 드뎌 그럴싸하게 똥을 변기에 싸주셨다. 야호다, 야호!!!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해서 애를 보는 애 아빠는 그 환희를 모른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결승까지가는 그런 기분이다. 두 달 간 내 애간장을 녹이더니 아이는 배변훈련을 완전히 마쳤다.어느날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났더니 "엄마, 잘 잤어? 나 쉬야했어." 깜짝 놀라 보니 바지가 안 젖어있었다. "어디다?" "화장실에서."응가도 마찬가지. 내가 일손이 너무 바쁘거나 잠들어 있으면 날 깨우지 않고 지가 스스로 휴지로 똥꼬를 닦고 내려와 팬티 입고, 바지 입고, 물 내리고, 손 씻고, 수건에 물 묻은 손을 닦고 나온다. 아직은 닦은 폼이 서툴기는 하지만 그쯤이야 저녁에 목욕하면서 다 날아가니 큰 문제 아니다. 껴있는 똥이 약~간 덩어리가 큰 경우엔 '엄마가 해줄께'라고 하지 않고 '엄마가 조금만 도와줄께'하고 닦는 법을 일러준다. 대신 해주는 것과 도와주는 건 엄연히 다르다. 내가 계속 대신 해주면 빠르고 정확하긴 하지만 아이는 자긍심과 독립심을 잃는다. 부모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배변훈련을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 아이보다 1년에서 1년 반이나 먼저 배변훈련 시작한 아이들에 비해 대소변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걸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다. 배변훈련을 시작하려는 어머님들께 건투를 빈다. 그날은 온다. 인내와 지혜로 버티시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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