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을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문제는 한국만 유독 별나서 그런게 아니란 사실을 알고나면 좀, 아니 많이 위로가 될런가?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지지난 번 대통령 선거, 그니까 시라크가 재선되던 때, '뽑을 사람이 없어서하는 수 없이' 시라크를 뽑아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당시 2차선거 후보가 시라크와 front national의 쟝마리 르펜이었는데, only 프랑스 옹호주의자인 르펜은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 및 이민자들 싹 쓸어 내보내기, 유럽연합과 함께 하는 프랑스 반대 (즉 유럽연합 탈퇴) 등을 주장했었다. 그가 2차선거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것은 '수치'라며 프랑스 국민들은 1차선거 발표일 바로 그날 저녁부터 전국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나도 그때 슬리퍼신고 동네 한바퀴를 돌고 들어왔는데, 당시 시위 대열이 어마어마 했었다. 건물 밖을 나올 수 없어 시위에 참가할 수 없는 시민들은 (예컨대, 노인들) 창가로 나와 박수를 보내고, 프랑스 깃발을 창밖으로 흔들며 시위에 동참했었다. 그날저녁TV를 트니 프랑스 전국에서 엄청난 인파가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르펜 반대'를 외친 걸 보고 저녁을 받던 위장이 뭉클했었다. 그 상황에서르펜이 대통령에 오르는 것을 막는 단 하나의 민주적인 방법은 시라크를 뽑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로인해 대통령직을 끝내고 예전 파리 시장 때의 일로 법정에 서야했던 시라크는 르펜덕에 대통령으로 재선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 이후 대통령 선거 때도 '뽑을 사람이 없다'란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사르코지도 아니고, 르와이얄도 아니고, 베이루도 아니고. 어쨌거나 또 한바탕그렇게대통령 선거를 치룬 지금, 시라크는 이제 법정에 서고있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곳의 대통령 선거 방식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보면, 각 당에서 결정한 후보들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 1차선거를 거쳐 최다수의 득표의 두 후보가 2차 선거에서 대결한다. 이 2차선거 캠페인은 매우 프랑스적이다. 두 후보간의 1대1 TV토론이 그것인데,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꽃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는 말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에 유리한 위치에 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언변이란게 말장난이 아니다. 언제나 준비된 말만 하는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 즉석으로 뱉는 말이 바로 기록되고 바로 언론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나는 직책이 바로 대통령 아닌가, 생각해보면 대통령만큼 말이 중요한 직책이 없다. 그는 모든 시사적인 사안에 대해서 생각이 있어야 하고, 모든 국민과 국가대표들의 질문에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어느 나라 대통령은 문법도 안 맞고, 문맥도 안 맞는 말 실수를 하도 많이 해서 '우스개 어록'으로까지 나와 해외에 번역되어 팔리기까지 않는가. 반면 최근 독일 메르겔 총리가 티벳을 방문할 갈 때, 심기가 불편한 중국이 불만을 표시하자 그녀의 한 마디 응수. "독일의 국가적 대표로서 내가 어디가서 누구를 만날 지는 내가 결정한다." 그녀의 배짱에 박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2차선거에서 붙은 두 후보는 상대편 후보의 약점과 강점을 제대로 파악해야하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습득해야 이 토론에서 이길 수가 있다. 타인이 제시하는 공약의 헛점을 파악하고 공격하며, 같은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응수해서 국민의 설득을 받아내느냐. 이걸 농담반 말장난으로 응수한다거나 말이 막힌다거나 추춤한다거나 말이 헛나간다거나 흥분해서 이성을 잃어버리면 생중계 TV를 시청하고 있는 국민들은 바보냐?TV가 없거나 전기가 하필 그 시간대 나가면 어떻게 하냐고? 바로 다음 날 각 언론은 대통령 후보의 갑론을박을 상세하게 객관적으로 적어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 일제히 실는다.나 TV 못 봤어요,라고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뿐만 아니라 논설위원들의 분석과 비교가 인터넷과 신문으로 공개된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세금 올리겠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금은 내려가는 법이 없다. ㅎㅎ 모든 약속이 다 꿈같다. 주택을 늘리고, 세금은 줄이고, 월급 올리고, 학비 줄이고, 실업률 줄이고, 출산률 높이고 등등등. 그런 말을 곧이 곧대로 다 듣고 찍어주는 국민은, 한 마디로 바보다. 귀에 듣기 달콤한 꿀같은 공약은 누군들 못 하는가? 사기꾼의 장기가 꿈같은 약속하기 아니던가? 가능성이 있는 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구분 못하고 공약이 좋다고 대통령으로 찍어주는 국민이 있다면, 그건 바보다. 대통령 후보가 와서 밥 사주고, 선물 주고갔다고 대통령으로 찍어주는 국민이 있다면, 역시 바보다. '월급 올려준다는데 그사람 찍지모'가 아니라 '대체 무슨 돈으로 그 프로젝트들이 실현가능한가?'라고 국민은 반드시 캐물어야 한다. '그 돈을 어디서 만들건데요?'라고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 왜냐면 대통령은 국민에게 돈을 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돈을 걷어서 운영하는 사람이니 프로젝트를 실현하는데 돈이 든다면 그건 국민의 주머니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아니면 수출을 잘 하든가, 관광수입을 엄청나게 긁어들이든가, 나라의 간을 팔든가, 외국의 빚을 지든가. 국민이 바라는게 적어도 후자의 2가지는 아니지 않겠는가?!!
대통령 후보의 광고를 보면 그 후보가 어느 투표자층을 겨냥하는 지 빤히 보인다. 그 광고를 보면서 의도대로 빠져주느냐, 광고와 공약을 분석하고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건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아닌지, 그 프로젝트가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바로 그것인지, 판단하는 건 국민들의 몫이다.
지난 번 프랑스 선거 때, '진짜 뽑을 사람 없다'는 말을 하던 중'당신은 누구를 찍게 될까요?' 퀴즈를 특집으로 실은 한 시사주간지가 눈에 띄어 냉큼 샀다. 난 투표권은 없지만 남편과 머리를 맡대로 해봤다. 1차 선거를 앞두고 될 성 싶은 삼인 대통령 후보의 분야별 공약을 요약해서 약 25가지의 실레를 든 프로젝트를 표로 그려놓고내가 어느 칸을 선택하는지 체크하는거다. 그렇게하면 내가 어느 후보에게, 아니 어느 후보의 프로그램에 가장 많은 호응을 보였는지 나중에 알 수 있다. 내가 보였던 결과는 한 후보에게 60%, 다른 두 후보에게 20%, 20%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뽑을 사람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다지 탐탁지 못하게 여겼던 한 후보에게 가장 많은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 60% 지지했던 후보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서 실제 업무를 하고 다닌다만 그의 활동에 만족하는건 아니다.
한국의 한 시사주간지나 인터넷에서 대선후보에 관한 퀴즈를 만들어 돌리면 재밌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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