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몇 달 앞선 임신한 빠디가 언젠가 그의 블로그 글에 '임신선'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었다. 그게 뭘까? 임신을 하면 막대그래프처럼 '나, 임신했음'하고 알리며 슬금슬금 나타나는 선일까? 한불사전을 찾아봤는데, 없었다. 임신 초기에 은근히 '내게도?'하고 기다린 적도 있다. 서울에서 보내온 얇은 임신안내책자를 보니 임신선은 임신 8개월이 되면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했다. 불어로 된 책, 우리말로 된 책과 인터넷 자료 등을 검색해보니 마침내 그게 뭔지 알게 되었고, 불어로는 'vergeture(베르쥐뛰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체중이 급격히 증가할 때, 허벅지와 엉덩이 부근에 나타나는 살터짐, 그게 바로 vergeture이다. 처음엔 분홍빛 또는 보라빛으로 나타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흰색으로 바뀐다. 이건 한번 나타나면 무슨 수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다. 한번 나타난 vergeture는 살을 뺀다고 절대 물러주지도 않으며, 성형수술로도 지울 수가 없다. vergeture를 우리말로 뭐라하나? 불한사전에서 찾아보니 의학용어로 '수축성 피부파열'이라고 적혀있다. 이건 임신할 때만 나타나는게 아닌데, 그걸 '임신선'이라 칭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그게 뭔지 아는 지금으로선 눈앞이 아찔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임신선 기다리지 말고 처방을 하라고 얘기를 해줬을텐데.
임신선이라는게 뭘까?
임산부의 체중증가율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임신선이라 고상하게 불리는 '피부파열'은 임산부의 경우, 임신 4개월부터 나타난다. 어디에? 유방, 엉덩이, 허벅지 주위에.
제일 먼저 불어오는 것은 가슴. 임신초기부터 불기 시작, 임신 4개월이면 더이상 불지 않는다. 가슴은 1kg정도밖에 불지 않는데, 그와는 비교되지 않을 속도로 불는 곳이 자궁 주위인 엉덩이와 허벅지다. 내 경우,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가 임신 4개월이 되던 때, 한 달에 3kg가 늘면서 허리 주변이 간지러웠다. 살이 터지려고 한다는 걸 직감하고 바로 다음 날 피부파열 방지용 크림을 사다 발랐다. 임신 7개월부터 마지막 3개월간, 태아의 몸무게와 양수가 2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산모의 체중이 허리 주변으로 급격하게 증가한다. 임신선이라 고상하게 불리는 '피부파열'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때다.
피부파열 방지크림
한국에는 임산부를 위한 가이드북이 얼마나 나와있는지, 얼마나 체계적으로 되어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이 여성에 대한 연구가 뒤져있다는 것만은 확신하겠다. 황교수의 소문많은 연구에 몇 천 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난자를 제공하면서도 그 후유증에 대해서는 미리 언급이 없었다는 것도 놀라왔고, 임신 5개월 초음파검사에서 태아가 '여자아이'면 낙태를 해버리는 바람에 아예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게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소식 저편에 깔린 무서운 사고방식에도 소름끼쳤다. (이건 엄연한 살인이라고 보는 입장임.)'수축성 피부파열'을 '임신선'이라고 고상하게 부르며 '여자가 임신을 하면 몸에 임신선은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마사지크림과 미용크림 생산에만 열을 올리지 임신선 방지 크림을 연구하고 생산해내지 않는 수두룩한 한국 내 화장품 회사들을 봐도 그렇다. 임신선 방지 크림이 있다는 걸 아는 한국의 산모는 오일이며 크림이며 유명메이커 수입품을 사다 쓴다. 가격이 얼만지 들어서 아는데, 무쟈게 비싸더라. 수입품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수출하는 상표들이 유명메이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돈 잘 버는 우리 시누이도 한국산모들이 쓰는 수입산 크림 안 썼다. 하긴 한국에서는 수입품이고, 여기서는 국산품인데도 시누이는 '비싸다'고 안 썼다. 체중증가가 완만한 임신 6개월까지 니베아크림을 바르고, 체중증가가 급격해지는 7개월부터 출산하는 9개월까지 피부파열 방지 전용크림을 발랐다고 한다. 피부파열 방지 전용 크림은 출산 후 1개월까지 쓴다.
임신선이 임산부에게만 생기는 피부파열이 아니듯이 피부파열 방지 전용크림은 임산부 전문크림이당연히아니다. 피부에 수분과 비타민을 제공함으로써 살이 터지는 걸 '가능한 한' 막아주는 기능을 가지며, 호르몬제는 들어있지 않다. 급격히 체중이 느는 청소년들이 쓸 수도 있는 크림이다. 따라서당연히굳이 화장품 회사에서 제조할 필요가 없는 제품이다. 여기 동네 약국에만 가도 판다.
"피부파열 방지(anti-vergeture) 크림 주세요."하면 "선호하는 제품이 있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선택의 여지가 있다.참고로, 내가 쓰는 제품의 가격은 13유로 정도 한다(100g). 한화로 약 15,600원. 임산부의 미용에 들어가는 약품이니까 보험으로 당연히 환불은 안된다. 얼마동안 쓸 수 있냐면, -사람마다 배와 엉덩이 넓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요? ^^- 내 경우, 100g짜리 튜브를 쓰는데 약 2달 걸렸다.
동네 약국에만 가도 파는 제품인데, 한국에선 수입화장품 가게를 뒤져야, 그것도 매장마다 다 파는건 아니고 임산부 전용코너에 가야 쉽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하니 그걸 미리 알았으면 지난 가을에 한국갈 때, 몇 개 좀 사가서 임신한 친구와 친척언니에게 선물할껄.. 싶더라.
우리 엄마 시대에는 '살이 터져도 애 낳는게 다 그러려니~'하고 지내셨다고 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울 시어머니도 내가 anti-vergeture크림을 사서 발랐다고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임신하면 당연히 누구나 생기는거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운명적인 것'으로 알고 지내셨기 때문에 anti-vergeture 크림의 존재조차 모르고 계셨다. 시대가 변한다. OECD 국가 중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상황은 형편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국의 만만찮은 경제수준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최하위가 아닐까 싶다. 그노무 경제발전에만 혈안되지말고 여성에 대한 더 많은 배려와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은장도'나 '열녀비'를 연상시키는 듯한 '임신선'이란 그 단어부터 임신 가이드북에서 빼라, 좀.
'Parents 교육/육아 > Grossesse 임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 (2) | 2006.03.02 |
---|---|
태동 위치가 바뀌다 (0) | 2006.02.25 |
산후조리에 대한 걱정 (0) | 200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