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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Grossesse 임신

11월 14일: 분만실 예약

1. 나에게 풀장을 달라!

3시간 후면 시어머니께서 도착하신다. TGV로 3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를 불사하고 하루 이틀 머물자고 파리를 오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 나의 분만실 예약을 잡아주는게 그분의 이번 미션!

 

생리가 멈추고 소변검사로 임신을 확인하게 되면, 그때는 이미 임신 5주째다. 근데 프랑스에서는  이때부터 바로~~!!! 분만실 예약을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입덧 조리를 한 달 간 더 하다가 갈까.. 했을 때, 신랑이 프랑스에서 '빨랑 오라!'고 재촉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분만실 예약 때문이었다. "임신 1~2개월에 분만실 예약하는거래. 안 그러면 나중에 우리 애기 길에서 낳게 될지도 몰라!!!" '길거리가 뭔가? 나에게 풀장을 달라! (쿨럭~)' 전화 저 편에서 신랑이 워낙 심각하게 애원을 하니 장난도 못 쳤다.

 

이 나라는 하이간 모든게 'rendez-vous(헝데부)', 즉 예약이 없이는 아무데도 못간다고 보면 된다. 은행에 내 계좌 관리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헝데부,의사를 만나러 갈 때도 전화걸어 헝데부,경시청에 서류하러 갈 때도 어떤 방법으로든 먼저 헝데부부터 잡고 봐야하며,결혼을 할 때도 결혼준비의 첫시작은 이 헝데부를 잡는 일부터 시작한다. 결혼식을 시청에서 하는데, 시청에다 헝데부를 먼저 잡고, 피로연을 할 식당에 헝데부를 잡는데, 늦/어/도/ 6개월 이전에 예약을 넣는게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는 식당에서 식을 치루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피로연 식당을 1년 전에 예약하는 커플도 많다. 청첩장은 3개월 전에 돌리고, '온다, 안 온다'는 확답을 식 1개월 전까지 받아 식당에 정확하게 예약을 넣어야 한다. '온다'고 했다가 안 오거나 '안 온다'고 했다가 오면, 낭패다. 피로연 1인당 식비가 10만원꼴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결혼문화는 언제 날 잡아서 길게 얘기하자) 한국에서 예식장을 6개월에 예약하러 가면 씨익~ 웃을껄? "뭐가 그렇게 급하시다구.. 자리 많이 비었으니 한 달 전에 오세요~" 청첩장도 식 한 달 전에 돌리는게 통례인 우리나라에서 보시기에 이상했는지 울부모님도 우리 신랑신부에게 그러셨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 너네가 서두르는거야? 프랑스가 원래가 그런거야?" 하다못해동네 미용실에 머리하러 갈 때도 헝데부를 잡아야 할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임신을 하고보니 이젠 또 분만실을 7~8개월 전에 예약하라고 하네? 애가 나온다 싶으면 근처 산부인과로 뛰어가면 되는게 아닌가부네? 허~ 참. 근데 병원에 가서 어느 의사에게 헝데부를 잡아야 하는지 알아야 말이야... 뭘 미리 알아보고 결정해야 되는지 알아야 말이냐고.. 아파서 병원 한번 갔다오는 거는 전혀 문제가 아닌데, 분만을 위한 산부인과를 예약하면 -이 나라에서는- 임신 6개월부터 그리로 통원을 해야한다고 하고, 임신 말기가 되면 1주일에 의사를 2번씩 봐야한다고 하니 이건 한번의 헝데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나와 내 아이의 건강과, 무엇보다, "생명"을 맡기는 중대한 문제라 아무 병원에나 덥썩 예약을 넣어서는 안되겠다 싶은거다. 

 

무엇을 알아봐야 하는지 여러 번 시어머님께도 묻고, 임신 7개월인 시누이에게도 전화로 물었다. 시어머님께서 "너만 원한다면 내가 올라가마". "괜찮아요, 어머님. 제가 알아볼께요." 했지만 지난 1주일간 '자궁' '양수' '제왕절개' '신생아' '기형' 등 분만과 관련된 새로운 어휘들이 속출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 사전 뒤져가며 깨우쳐가고 있는 판국에 병원에 가서 혼자 이래저래 알아보고 따져보고 '어느 병원! 어느 의사!"로 결정내릴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나에게 풀장을 달라'던 배짱은 꼬리를 감추고, 전화 띠리리~ "어머님, 와주세요. SOS!" ㅠㅠ

 

 

2. 지리멸렬한 서류의 파도와 또 한판 씨름

아침에 보험국에 갔다. 남편의 회사보험을 배우자에게도 받을 수 있게 되서 지난 주 보험카드를 반납했었다. 새로운 서류가 도착할 때까지 내 보험은 당분간 무효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분만실을 예약할 수 있을지 물어보러 갔다.

 

보험국: "임신증명서 있어요?"

나: "12월초에 산부인과 의사를 보러 가는데, 그때 받을 수 있을꺼에요"

보험국: "임신증명서 갖고 오시면, 보름 후에 서류 발급해 드립니다."

나: "지금 임신 10주차로 접어드는데요. 새 서류 발급받을 때라면 한 달 후, 임신 3개월이 지나가는데 분만실 예약이 너무 늦지 않을까요?"

보험국: "새 서류 없으면 분만실 예약 못 잡습니다."

 

뜨아아~~ 아, 또 씨름 한 판 시작하는구나. 시어머님은 저녁에 기차타고 올라오시는데 으쯔까나..!!! 집에 와서 분만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 "보험서류, 보험카드, 임신증명서 필요없구요. 혈액검사나 초음파검사 결과가 있으면 예약 가능합니다."

나: "혈액검사는 했구요. 초음파를 한국에서 임신 5~7주차에 봤는데, 유용한가요?"

(전에 말했다시피 프랑스에는 12주가 넘어야 첫초음파 촬영을 할 수 있다)

병원: "문제 없습니다. 마지막 생리일과 출산예정일만 아시면 돼요."

 

흐뭇~! 보험국과 병원측의 말이 이렇게 다르다. 혹시나 싶어 아침에 받아온 혈액검사 결과를 다시 들여야봤다. 대체 어느 항목이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거람??? 결과서를 들고 다시 lab에 갔다. lab의 답,

"테스트 중에 임신을 증명할 수 있는 항목은 없네요." @@!!!

 

병원이 집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곳이라 재확인하러 전화를 걸었다. 지난 금요일에 신랑이랑 먼거리 갔다가 이미 한번 빠꾸맞았으므로. 흑흑~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받았다.

 

나: "혈액검사를 하기는 했는데, 임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검사는 없는데요. 임신 5~7주차에 한국에서 찍은 초음파 사진 가져가면 예약 가능하죠?"

병원: "예, 가능해요. 근데 어디 사시죠?"

나: "지금은 어디 사는데, 3주 후면 거기로 이사합니다."

병원: "주소지가 추적되기 때문에 지금은 예약하실 수 없구요. 거기로 이사한 다음에 오세요."

나: "새 집 계약서에 싸인까지 해서 이사가 확실하고 거기에서 분만할게 확실한데요?"

병원: "이사하신 후에 오세요."

 

아니.. 임산부는 이사도 할 수 없단 말이냐? 분만을 3개월 앞두고 이사하는 임산부가 있다면, 대체 분만실 예약도 못 하고 길거리에서 낳으란 말이냐 뭐냐? 어머님께 전화를 삐리리~ 돌리려다가 '이미 기차에 타신 분, 어찌하리? 도착하신 다음에 대책을 세우자' 싶어 말았다.

 

배는 불러오지도 않는데 분만실 예약 문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이 없다. 2시간 후면 '협상의 여왕' 어머님이 몽빠르나스역에 도착하신다. 미션이 과연 성공할 지...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