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두 커플을 초대했어서 오늘은 장이 서는 날, 장에 나가 먹거리를 사와 양념에 절여 준비를 했다. 남편쪽 손님을 한국식으로 초대하기는 극히 드문 일이다. 그렇다고 모 내 쪽 손님은 늘 한식으로 준비하느냐.. 잠깐 생각보니까 그건 아니로구나. 으흠. 근데 말이지.. 사람들이 12명, 14명이 우루루 오면 한식으로 도저히 준비할 수가 없다. 한식 준비하려면 씻고 썰고 손이 을~~~마나 많이 가는데 한국처럼 아낙네들이 미리미리 와서 손을 거들어 주면 몰라도 그게 아닌지라 아예 시작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반찬을 요리조리 하고, 12~14명분 초대할 정도로 한식상을 차릴 줄 잘 아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경제차원에서 보더라도 한식으로 그 많은 인원의 밥상을 차리고 나면 우리집 한 달 식비가 간당간당 할꺼다. 프랑스에서 한식으로 장을 보면 비싸거든요. 한국에서 수입식료품 사는거나 마찬가지.게다가 12인분을 할 밥솥도 없거니와 그 비싼 한국 쌀을 내놨는데 밥풀을 다 안 긁어먹었다가는 손님이니 구박도 못하고 어쯜꺼냐 말이다 !
어쨌거나 내일 모일 인원은 어른 6~7명에 아이 하나. 그중에 임산부가 둘. (난 아녀!!!)
이들을 위하여 준비한 메뉴는 전식(entrée)으로 토마토와 오이 샐러드에 키위 드레싱, 메인(principal)으로 소불고기와 돼지불고기를 준비했고, 여기에 상추와 밥이 첨가되겠지, 디저트(dessert)로 멜론펀치를 준비할 예정이다.
오늘은 프랑스의 손님 초대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나.프랑스인들은 집에 불러 잘 먹이지 않는다. '밥 한 숟갈 더 놓으면 되지' 정도는 초대도 아니고, (여기서 만난 한 한국엄마가 지나가는 길에 들른 나를 '밥 한 숟갈 더 놓으면 되니 들어와서 먹으라'는걸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밥 먹고 왔노라고'한 것을 같고 '초대를 거절한거 당신이었다'고 쏴붙이드만. 이 사람아.. 그건 한국식으로도 초대라 하기는 민망한걸쎄)초대하고 하면 최소한 2주 전에, 때로는 한 달 전에 날짜를 잡아서 apperitif(아페리티프)부터 디저트까지 내놓는다. 식사시간은 총 약 3~4시간 걸린다. 프랑스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 4~5시간 걸리는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정말이지 테이블에 앉아서 죽~~~는줄 알았다. 배가 너무 부른데 좀 걸어다닐 수가 있나 불어가 들리기나하나..
대체 4~5시간동안 뭘 먹느냐고? 달리 프랑스인들을 gourmand(구르멍; 미식가라는 뜻)이라고 하겠나? 불어 배우던 때, 프랑스인들의 식사법과 음식 나오는 챕터에서 -맛은 하나도 모르는- 음식 단어며, 테이블 세팅이며, 식사관련 단어 하나 하나 외우느라고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프랑스인들은 이 긴긴 시간을 걍 많이 먹자고 보내는게 아니라, 얘기하기 위해서 식사를 한다.
사람들을 초대한 날은 테이블보도 예쁜 걸로 깔고, 집단장도 당근 신경을 쓴다.접대용 음식준비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우며, 초대한 시간이 가까와오면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손님맞을 준비를 한다. 쥔장의 부인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을 하기도 한다.또한 이날은평소에 안 쓰는 숨겨둔 '접대용 식기'가 따로 나온다. 이건 쥔장 아내의 자랑이기도 한 것이다. 평소에는 사기로 된 막접시에 먹지만 이날은 반짝이는 도자기 접시를 꺼내고, fourchettes(훗쉣; 포크)과 couteaux(꾸또; 나이프), 디저트에 쓸 작은 스푼 등도 멋진 걸들로 세팅되어 테이블을 장식한다.이렇듯이 집에 부르는 손님에게 온갖 정성을 부어 대접하기 때문에 식사초대는 친한 사이나 어느 정도 잘 아는데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 귀중한 사람만 부른다.
그나저나 프랑스인들은 무슨 얘기를 그래 할까?
프랑스인들사적인 얘기를 잘 안 하고, 타인에게도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기로 아주 유명난 사람들이다. '잘 지내?'하고 안부를 물었을 때 '응, 잘 지내'는 댐댐하게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이에서나 이렇게 썰렁하게 대답한다. 그러면? 최근에 갔던 여행에 관한 얘기며, 이사를 했다거나 옮긴 직장에 대한 얘기며, 아이에게 생긴 눈에 띄는 발전과정 등 안부를 얘기하면, 그것들을 소재로 대화를 발전시킨다. 대화가 한참 진행되면 개인의 안부를 떠나 사회문제, 경제, 정치, 인터넷 등 소재가 다양하게 발전되며 우스개와 개인이 겪은 에피소드 등으로 왁자지껄 웃는 분위기로 흐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먹거리가 어떻게 나오느냐....
apperitif(아페리티프)
땅콩이나 크래커같은 과자류, 쏘시쏭 등을 도수가 낮은 알콜 음료와 함께 먹는 걸 말한다. 아페리티프는 그니까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며 '나 먹을꺼에요~'하고 위에 사인을 보내는거다. 기호에 따라 무알콜 음료, 예컨대 과일쥬스를 마시기도 한다. 과일쥬스를 알콜에 섞어서 마치 과일소주처럼 알콜 맛이 안 나게 먹기도 하고, 때로 남자분들은 쥬스 섞지 않고 알콜만 마시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마티니, porto (뽁도), 위스키, 백포도주, licoreu (리꼬뢰) 등. 많은 양 아니고 소주잔 한 잔 정도?
반드시 아페리티프 뒤에 식사가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만남의 자리에 아페리티프를 준비하기도 하는데, 전시회라든가 오프닝 행사에서 흔히 보는 음료와 주점부리 서빙이 이에 속한다. 또는 식사초대까지 하기는 부담스러울 때, 아페리티프와 함께 1~2시간 얘기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집에서 아페리티프를 하는 경우, 정원이 있으면 잔 하나 들고 정원을 거닐며 얘기하지고, 보통은 낮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소파에 둘러앉아 먹는다. 우리말로는 '먹는다'고 했지만 실은 아페리티프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 아페리티프에 쓰는 잔은 폭이 좁고 키가 큰 잔을 쓰거나 under rock으로 마실 경우는 목이 없고 지름이 넓은 잔을 쓰기도 한다.
Entrée (엉트레)
전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아페리티프가 끝나면 식사용 테이블로 이동해서 '엉트레'를 들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에 가면 엉트레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집에서는 손쉽게 대개 살라드(salade, 샐러드)로 주로 대접한다. 이날의 주요리는 따로 있기 때문에 엉트레에는 크게 신경을 쏟아붓지 않는다. 엉트레보다는 메인과 후식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이다.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꼬진 식당을 가도 풀코스가 나온다. 이 장면에서 menu와 carte를 설명해야겠다. menu(므뉴)는 전식-메인-후식을 한묶음으로해서 시킬 수 있게 되있는 주문방식이고, carte(깍뜨)는 전식은 전식대로, 메인은 메인대로, 후식은 후식대로 따로 시킬 수 있도록 되있는 주문방식을 말한다. 므뉴에는 전식-메인-후식이 묶어진 것이 있고, 므뉴라해도 전식, 메인, 후식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이 몇 가지 주어지는 것도 있다.carte로도 전식-메인-후식을 풀코스로 먹을 수 있고, 전식-메인, 또는 메인-후식, 또는 메인만 달랑 시켜 먹을 수도 있다.프랑스 요리로 가장 유명한 달팽이요리는 엉트레에 속한다. 6마리 혹은 12마리를 시킬 수 있다. 후식까지 먹을 사람은 6마리만 시킬 것. 안 그러면 배불러서 살살 녹는 초콜렛케익 앞에서 울어버릴 수가 있지롱. 다시 손님 초대 얘기로 컴백..
Principal (프랑시팔)
(위에서 계속 '메인'이라고 말했던) '프랑시팔'은 그야말로 집쥔의 솜씨가 나오는 오늘의 주요리! 고기나 생선을 중심으로 야채나 곡류가 곁들여 나온다. 채식주의자는 야채나 곡류만으로 된 걸 먹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초대되는 날 미리 말을 해둬야 한다.프랑시팔을 위해서는 요리 하나에 한 시간 이상 걸리는건 보통이다. 그전날 절이거나 양념을 해서 숙성시킨 후에 다음 날 요리해야 하는 격 높은 요리들도 있다. 내일의 프랑시팔로 오늘 돼지불고기 2kg과 소불고기 1.3kg를 양념에 재워 냉장고 안에서 자고 있다.
아페리티프용 알콜은 아페리티프에서 끝내고, 프랑스팔이 시작되면 술 종류가 바뀐다. 뻔하잖은가, 포도주! 물론 아페리티프에 나오는 단맛이 살살도는 포도주도 있다. '리꼬뢰'라고 하는데, 그건 역시 아페리티프용이고, 프랑시팔에까지 들고 오지 않는다. 프랑시팔에서는 주요리에 따른 포도주가 따로 나온다. 포도주잔 옆에 물잔도 있는데, 포도주잔이 물잔보다 더 화려하든가 크기가 더 작고 아담하다. 쥔장이 포도주병 들고 서빙할 때, 큰 물잔 들고 덤비지 말기.
Dessert (데쎄르)
(위에서 '후식' '디저트'라고 했던) '데쎄르'도 차례가 있다. 데쎄르 세 가지 차례대로 받고나면 테이블에서 자동으로 멀어지게 된다. 배가 나와서.'데쎄르로 뭘 드시겠어요? 무엇 무엇 무엇이 있어요'라고 쥔장이 먼저 묻는다.
fromage(후로마쥬). 영어로 cheese. 한 4~5가지가 한 번에 나오는데 구미에 당기는 것만 한두개 먹는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에 익숙치 않아 어떤 후로마쥬가 무슨 맛인지 모르면 '이것저것 조금씩 다 맛을 봐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모든 후로마쥬를 조금씩 다 맛봐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 서빙된 모든 후로마쥬를 다 건드리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쥔에게 먼저 양해를 구할 것. 후로마쥬를 단독으로 먹기도 하고, 테이블에 처음부터 끝까지 줄창 놓여있는 빵바구니에 담긴 바게트에 바르거나 얹어서 먹기도 한다.
gâteau(갸또)가 있으면 '먹을꺼냐? 말꺼나?' 묻지않고 바로 나온다. 케잌류와 쿠키, 마카롱 등을 포함해서 단맛이 도는 베이커리류를 말한다. 쥔장이 갸또를 굽기도 하고, 초대 손님이 갸또를 갖고 오기도 하고, 두 개 이상의 갸또가 상에 오르기도 하고.. 그렇다. 커피나 차가 갸또에 따라 나온다거나 샴페인, 소화를 돕는 도수가 높은 술 등이 곁들여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손님 중에 하나가 갸또를 준비하겠다고 해서 내 쪽에서는 이 더운 날 시원하게 먹을 과일펀치를 준비하기로 했다.
fruits(후뤼) 과일이다. 과일을 하겠다고 답하면 쥔장이 무슨 무슨 과일이 있다고 알려주거나 과일이 담긴 접시를 갖다 내놓는다.
yaourt(야우르) 야쿠르트. 마시는 야쿠르트도 있지만 데쎄르로는 떠먹는게 나온다.
glace(글라스) 아이스크림.
위에 적힌 데쎄르 중에 쥔장이 한 가지 선택을 해서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 후식이 다 나올 경우는 후로마쥬-갸또 혹은 글라스-후뤼 순으로 나온다. 갸또와 글라스가 다 준비된 경우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한다. 배가 부르거나 생각이 없다면 non merci하고 거절해도 된다.
초대를 받았을 경우
누가 식사초대를 하면 바로 '난 무엇을 갖고 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쥔장은 아페리피트를 갖고 와달라거나 포도주를 들고 와달라거나 데쎄르를 갖고 와달라거나 부탁한다. 그러면 '저는 ***을 갖고 갈께요'하고 답한다. 특히 데쎄르의 경우, 어떤 갸또를 해갖고 간다거나 크렙(crepe)을 해갖고 가겠다거나 여름이라면 아이스크림을 갖고 간다거나 구체적으로 대답한다. 그래야 쥔장이 초대 당일날 무엇을 준비해야하고, 무엇은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만일 '아무 것도 안 들고 와도 된다'고 하더라도 빈손으로 가는 법은 없다. 꽃 한 다발이나 초콜렛 한 상자, 아니면 쥔장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음식이든 선물이든 현관에 나오는 쥔장이 아니라 반드시 그의 '아내'에게 건내준다.
집에 초대되었을 경우, 집쥔이 먼저 '집구경 시켜드릴까요?'라고 묻지 않는 한 '집 좀 구경 시켜주세요'라고 요구하는건 실례다. 자신의 사적영역을 침해받기 싫어하는만큼 타인의 사적영역도 침해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적영역을 침해하는건 실례라기 보다 '무례'로 여긴다.
프랑스인들은 평소에도 위에 설명한대로 먹을까? 그건 아니다. 식사초대를 한 '특별한 날'의 경우다. 평소에도 살라드, 프랑시팔, 후식으로 후로마쥬와 야우르 정도는 먹지만 격식을 차리지 않을 뿐더러 프랑시팔이라고 말은 하지만 간단한 고기/생선류에 감자나 곡류를 함께 먹는다. 우리 시아버님은 적포도주는 아침을 제외하고 매끼니 마다 드시지만 평소 식사에 포도주를 곁들이지 않는 프랑스인들은 오늘날 많다. 때문에 국내에서 소비량이 줄어든 포도주를 수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식사초대에 한번 받아보거나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풀코스를 먹어보고 나면 감이 확 올 것이다. 풀코스 한번 먹어보고 나니까 쬐만한 비행기 기내식에서도 전식-메인-후식이 보이더라는.. ^^ 이렇게 살다가 미국에 가보니 뉴욕 레스토랑 주문판 앞에서 당황스러웠다는.. 그 얘기는 언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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