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인글에 프랑스의 볼레와 한국의 발에 대해서 덧글 쓰다가 글을 하나 아예 쓰기로 했다. 한국 건축엔 왜 여름에 특히 '그좋은' 볼레가 없을까? 나름대로 생각한 건데 그건 유럽과 한국의 전통건축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럽 건축물엔 문을 제외하고는 닫힌 창을 만들 수 없었다. 창이라고 하면 그저 뻥하니 뚫린 구멍이었고, 이걸 나무쪽으로 막지 않고서는 들이치는 바람과 비를 피할 방도가 없고, 난방이 오래 가지 않는다. 실례로 유럽의 오래된 성(palace)에 가보면 지금이야 창을 유리로 막아놨지만 건축 당시에는 그냥 뻥~ 뚫린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보면 멋있지만 당시엔 벽난로 하나에 의지한 방에 바닥과 천정, 벽 등 사방이 돌로 되어 있고 창이 아예 없거나 창이 있어도 여닫이 볼레나 커텐 외에는 막을 방도가 없는 걸 보면 세상에 얼마나 추웠을까 상상하는건 아주 쉬운 일이다.
그 때문에 유럽에선 침대가 발전했다. 왜?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를 피하기 위해서 공기층을 두고 바닥으로부터 거리를 둬야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유럽인들 침실을 보면 침대가 바닥에서 1m 가량 떨어져있고, 이불은 겹겹이 수북~해서 총두께가 장장 약 50cm 정도는 된다.겨울철에 잠들기 전에 침대를 다리미같은 것으로 지져야 했고 (이런 도구는 한국에도 있었다), bouillotte(부이욧)이라는 물주머니를 침대 안에 넣고 자며 (난방이 후진 프랑스에서 살면서 나도 부이욧을 양옆구리에 끼고 잠들어야했던 겨울밤이 여럿 된다),그것도 모자라 발전된게 ciel de lit (아래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 참고). 난방이 잘 되는 지금이야 우아하게 낭만적인 악세서리로 쓰지만 당시엔 추운 밤동안 몸에서 나오는 체온마저 아껴 가능한한 열을 보존해야 했던 것이다.
유럽 건축에서 타피스리(tapiserie)가 발전된 것도 방한의 목적이 컸다. 단열재 하나 없이 넓은 돌벽을 그냥 뚫고 들어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타피스리를 벽에 걸어 방한역할을 했고, 가능한 보기 좋게 미적인 면도 발전했던 것.
이에 반해 한국의 전통가옥은 유럽의 돌로 지은 건축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한국은 큰 돌을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테일들은 유럽의 전통건축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도의기술로 지어졌다.
우선, 침대와 벽난로가 필요없었다. 왜? 방바닥 밑에 파이프를 묻어 열기를 통과시키는 엄청나게 우수한 난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난방이라고 별도로 벽난로이나 난방기구를 따로 만들어야 할 필요조차 없이 부엌에서 요리할 때 떼는 열로 방을 덥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식혀진 열은 굴뚝을 통해 나가게 만들었다. 이름하여 '온돌'.
바닥에서 찬기는 커녕 온기가 올라오니 바닥에 바로 등을 깔고 누워서 자면 충분했고, 50cm나 되는 이불과 두꺼운 매트리스가 필요없었기 때문에 한 겹의 요와 한 겹의 이불만으로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굳이 침대가 필요없었다. 요와 이불을 한 켠에 접어두고 밤에 잘 때만 꺼내쓰면 충분했으니 자기 위한 용도만을 위해 굳이 '침실'을 둘 필요가 없었다. 침실은 거실이 될 수도 있고, 서재가 될 수도, 집무실이 될 수도 있었다. 요와 이불을 한 켠에 접어둘 작은 공간만 있다면.
벽난로는 열의 전도방식 중 '복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기를 직접 덥히는지라 불이 꺼지면 바로 서늘한 기가 돌고, 잠시의 통풍만으로 열을 다 빼앗겨 버리지만, 온돌은 '전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불이 꺼진다해도 덮혀진 돌판이 식는데는 꽤 시간이 걸리며 통풍을 한다해도 바닥을 덮어두면 바닥의 온기는 계속 유지하게 된다. 더군다나 난방기를 벽에 설치하는 것보다 같은 면적의 난방기를 바닥에 설치하면 전도열이 위로 상승하므로 방을 훨씬 골고루 효율적으로 덥힐 수 있다.
유리가 없던 때, 우리 조상은 무엇으로 창을 막았을까? 바로 종이. 예쁜 문양의 문살에 질긴 한지를 붙이면 그것만으로도 바람을 막는데 충분했다. 우리 조상은 종이로 창을 만들고, 종이로 보석함을 만들었으며, 종이로 쟁반도, 등잔도, 가구도 만들었다. 더운 한낮에 볼레를 내리면 캄캄하지만 문풍지는 닫아도 안이 환했다. 햇볕은 가리고 바람은 들이고 싶다면 미서기 문을 열어두고 발을 치면 됐다.볼레가 건물 외부에 있는 이유는 이곳의 창이나 문들이 하나같이 미서기가 아닌 미닫이, 그것도 안쪽으로 여는 미닫이식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유럽건축에 발을 쓸 수 가없다. 건물 외부에 발을 치자니 지붕이 짧은 건축형태에서 발이 비바람에 닳을 것이 뻔하잖은가.
뿐만 아니라 볼레가 필요없는 한옥의 이유는 한국기후에 맞도록 설계된 지붕 처마에 있다. 해가 낮은 겨울에는 마루끝까지 해가 들고, 해가 높은 여름에는 마루 끝에서 해가 떨어지게끔 길이와 각도가 설계되었다. 한지로 된 미서기문을 닫으면 바람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개선하는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더운 한여름에는 한지문의 아랫부분을 세로로 끌어올려 처마 밑에 달아 놓으면 바람이 잘 통하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유리는 조금만 깨져도 전체를 통으로 갈아야 하지만 한지는 조금 뚫렸다한들 구멍보다 큰 종이를 잘라 붙이면 되니 얼마나 수선이 간편한가? ^^온돌방과 침대방의 차이는 육아방식을 좌우한다. 이건 얘기가 너무 옆으로 새는 것 같아서 언제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으면 하기로 하자.
한가지 덧붙여 서구 전통건축에 비해 한옥의 우수성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우리가 '뒷간'이라고 부르는 화장실이옛날 서구 건축에는 설계되지 않았다. 단적인 예가 '에티켓(etiquette)'이다. 지금은 예절이란 의미로 쓰는 에티켓이란 단어는 실은 불어로 '작은 표지판'이었다. 그 넓은 베르사이유성에도 화장실이 하나 없었다. 사흘이 멀다고 귀족들이 모여 화려한 파티를 벌이는데 화장실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베르사이유 궁궐보다 10배는 넒은 정원에 나가서 볼일을 봤다. 정원손질만으로도 일이 엄청난데 냄새나는 인변을 매일같이 치우기란 참 곤혹스런 일이었다. 정원손질사는 성주에게 간청하여 '정원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지 말아주세요'라고 에티켓을 붙였다. 똥오줌을 가리는 일이 기본적인 예절로 변했다. 영국에서 중절모와 어깨를 덮은 코트가 만들어진 기원, 하이힐이 만들어진 기원 등을 보면 다 실내에 화장실이 없던 유럽의 전통건축문화에 기인한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뒷간이 있던 우리에게는 상상이 안 가는 도시문화였을 것이다. 옛날 얘기하면서 서양사람들 깔보지말기. 금언 중에 '시저는 대머리를 월계관으로 가릴 줄 알았다'는 말이 있지요? ^^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가 들어찬 오늘날 한국에서 한옥을 찾아보기란 참 힘든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시멘트의 내구성이 100년인데, 100년동안 가만 놔두는 건물이 있기나하나?) 온돌이야 온돌식 보일러로 대체되었다해도 처마는 없어졌고, 발코니와 베니션 블라인드, 소파와 침대 등 서구 건축문화가 온통 한국인의 주거양식을 잠식했다. 문화라는게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는거라지만 건축양식이란게 없는 현대 서울의 주거건축은 미적으로도 나은게 하나없고 창조적인 면에서나 주체성면에서나 이래저래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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