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나 다음이나 메인에 뜬 기사제목들을 보면 패륜아, 패륜부모를 다룬 기사가 거의 매일 올라오고 있다. 선정적이거나 패륜적이거나. 자극적인 기사제목을 메인에 내보내는 건 네이버측이 비교도 안되게 심하다. 물론 네이버의 잘못이 아니다. 스무 개가 넘는 각 언론사에서 기사를 골라 네이버라는 창구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니 잘못은 창문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서 뭘 보여주려는 이들에게 있다. 독자를 '낚기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만들어 전송하는 측의 편집이 굴절되도 한참 굴절됐다. 전혀 선정적인 기사가 아닌데도 기사를 읽으려고 클릭하면 옆에 뜨는 섹스관련 광고는 대체 뭔가? 아래 화면을 읽으려고 내려가면 줄줄이 내려와 끝까지 따라다녀요 또. 어린애들하고 같이 앉아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을 수가 없다. '언론'이란 단어에 먹칠하지말라말이다 제발!!! 반면에, 제자하고 성관계 맺은 선생님의 사생활정보가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로 퍼져가는 걸보면 반드시 일개 서버의 편향된 시각이라고만 할 수가 없다.
말이 좀 샜는데, 성도착적인 기사선정과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단광기에 대해서는 이만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13세 패륜아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하자. 모든 비난이 13세의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소년에게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이가 원하는 진로와는 생판 다른 직업을 갖기를 강요하고,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나 하라고 종용하고, 부모가 말하는대로 하지않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골프채로 아이를 때리는 부모로부터 아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짓을 하든 '부모의 이름으로' 다 용납되는건 아니다. 한국언론을 보면 부모의 이름으로 용서가 안되는건 친딸을 성폭행한 친부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또 성과 관련된 기사다. 미디어만 보고 한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에 의하면 한국사회는 성에 집착해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자식을 패도 부모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패면 미화되는가? 그런가? 애정의 이름으로 강간을 하면 강간이 용서되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거라면 무엇이든, 폭언도 폭력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구성원 사이의 이해는 절대 무시되고, 대화는 단절되고, 강압과 폭력으로 강력한 수직적 서열을 지키려는 사회. 13세 아이의 가족관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건데, 마치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마저 요약설명하지 않든가?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용납이 안되서 분노하고 폭력마저 불사하는 이들은 13세 소년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국회의원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행인일 수도 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간에 있는 13세 아이의 행동이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엉큼하다'고 언론들이 기사화한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의 편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때는 나 역시 13세를 거쳤던 어른으로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모조리 날리는 화살이 결코 아닌 것 같다.
'집에 아빠만 없었으면..'하는 생각에 집착해 한순간의 불찰로 부모와 동생과 할머니와 집을 하룻밤에 잃어버린 13세 소년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잃었다. '엄마~'를 외치며 흘린 눈물은 <모래시계>를 압도하는 눈물연기가 아니라 그 소년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13세 소년이 '집착은 살인을 낳는다'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나오는 명문장을 들었을 리 없고, 김기덕의 영화를 봤다한들 골프채를 휘두르는 아버지 앞에서도 '집착은 살인을 낳는다, 아버지를 용서하자'며 부처님의 마음으로 골프채를 맞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가족 안에서 대화로 풀어가는 방법을 습득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평화적인 방법을 습득했다면 그 소년은 절대 불을 지르지는 않았을 꺼라고 난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폭력이 폭력을 낳았다면, 태어난 폭력만이 잘못은 아니다. (전자의) 낳은 폭력 또한 잘못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13세 소년을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할 뿐, 폭력과 강압이 팽배하는 가정교육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묵인하는 그들이 나는 더 무섭다. 동의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지금도 수 십 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판/검사가 되라, 의사가 되라'는 요구를 받든 안 받은 일류대학, 일류기업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뛰어나가 놀아야 할 나이에 학원과 학원을 셔틀버스로 다니며 경쟁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말이 안되서 맞아야 되는 인간. 그렇게 쓰는 폭력은 용서가 되는가? 왜 사회가 그렇게까지 굴러왔을까?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 인간 하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이란게 뭘까?
자식은 부모가 가르치는 걸 배우는게 아니라 부모의 습관과 언행, 다시 말해서 부모 그 자체로부터 압도적인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부모의 영향은 자식의 심리 속에 남아 평생을 간다. 13세 패륜아가 '제대로 배워먹지 못했다'면 부모의 잘못이 크다. 비난의 화살을 나눠짊어질 이들이 재가 되어 그 소년 하나가 모든 화살을 맞고 있을 뿐이지. 하룻밤에 이미 충분히 모든 것을 잃은 아이에게 말이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와 같은 편에 서서 싸잡아 비난만 하지말고, 충격적인 뉴스라며 혀만 차지말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13세, 너무 어린 나이다. '방화범'이란 이름으로 남은 인생을 살라하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 아이의 행동을 감싸고 옹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존중받아보지 못한 자, 존중을 모르며, 폭력으로 성장한 자,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 밖에는 모른다. 이 미성년의 아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고, 권리가 있다. 이 아이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사회가 모조리 비난만 한다면, 이 아이는 사회에 대해 더 큰 복수심만 키울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도 그는 없다. 부모가 살아있었다해도 사랑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과 강요는 사랑이 아니니까. 또한 '존중'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가 어떠하다한들 어느 누구도 부모란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부모 '대신' 사랑을 줄 수는 없다. 부모란 그런 까탈스런 자리다. 심리학적으로 부모란 자식에게 평생 영향을 주는 그런 자리인 것이다.
그가 커서도 폭력을 일삼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란다면 그 아이에게 비난을 멈추지 마라. '패륜아'라고 욕하고, 혀를 차고, 쥐어박고, 뒷발로 걷어차고, 계속 비난하라. 먹은 먹이 그대로 그는 성장할 테니까. 하지만 난 10년 뒤, 그가 23세가 되었을 때, 올바른 판단력과 바른 심성을 가지고 성장해 있기를, 사회에 나와 멋진 일꾼이 되기를, 그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판검사는 잊어버리고 무엇을 하든간에 행복하기를,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기를 바란다. 그 아이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당신도 저와 같이 기도해주시렵니까? 같이 기도해주실분, 덧글 안 다셔도 좋습니다. 공감으로라도 답해주세요. 여러분의 공감이 그 아이가 앞으로 심신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말이 좀 샜는데, 성도착적인 기사선정과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단광기에 대해서는 이만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13세 패륜아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하자. 모든 비난이 13세의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소년에게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이가 원하는 진로와는 생판 다른 직업을 갖기를 강요하고,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나 하라고 종용하고, 부모가 말하는대로 하지않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골프채로 아이를 때리는 부모로부터 아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짓을 하든 '부모의 이름으로' 다 용납되는건 아니다. 한국언론을 보면 부모의 이름으로 용서가 안되는건 친딸을 성폭행한 친부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또 성과 관련된 기사다. 미디어만 보고 한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에 의하면 한국사회는 성에 집착해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자식을 패도 부모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패면 미화되는가? 그런가? 애정의 이름으로 강간을 하면 강간이 용서되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거라면 무엇이든, 폭언도 폭력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구성원 사이의 이해는 절대 무시되고, 대화는 단절되고, 강압과 폭력으로 강력한 수직적 서열을 지키려는 사회. 13세 아이의 가족관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건데, 마치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마저 요약설명하지 않든가?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용납이 안되서 분노하고 폭력마저 불사하는 이들은 13세 소년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국회의원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행인일 수도 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간에 있는 13세 아이의 행동이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엉큼하다'고 언론들이 기사화한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의 편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때는 나 역시 13세를 거쳤던 어른으로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모조리 날리는 화살이 결코 아닌 것 같다.
'집에 아빠만 없었으면..'하는 생각에 집착해 한순간의 불찰로 부모와 동생과 할머니와 집을 하룻밤에 잃어버린 13세 소년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잃었다. '엄마~'를 외치며 흘린 눈물은 <모래시계>를 압도하는 눈물연기가 아니라 그 소년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13세 소년이 '집착은 살인을 낳는다'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나오는 명문장을 들었을 리 없고, 김기덕의 영화를 봤다한들 골프채를 휘두르는 아버지 앞에서도 '집착은 살인을 낳는다, 아버지를 용서하자'며 부처님의 마음으로 골프채를 맞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가족 안에서 대화로 풀어가는 방법을 습득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평화적인 방법을 습득했다면 그 소년은 절대 불을 지르지는 않았을 꺼라고 난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폭력이 폭력을 낳았다면, 태어난 폭력만이 잘못은 아니다. (전자의) 낳은 폭력 또한 잘못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13세 소년을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할 뿐, 폭력과 강압이 팽배하는 가정교육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묵인하는 그들이 나는 더 무섭다. 동의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지금도 수 십 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판/검사가 되라, 의사가 되라'는 요구를 받든 안 받은 일류대학, 일류기업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뛰어나가 놀아야 할 나이에 학원과 학원을 셔틀버스로 다니며 경쟁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말이 안되서 맞아야 되는 인간. 그렇게 쓰는 폭력은 용서가 되는가? 왜 사회가 그렇게까지 굴러왔을까?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 인간 하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이란게 뭘까?
자식은 부모가 가르치는 걸 배우는게 아니라 부모의 습관과 언행, 다시 말해서 부모 그 자체로부터 압도적인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부모의 영향은 자식의 심리 속에 남아 평생을 간다. 13세 패륜아가 '제대로 배워먹지 못했다'면 부모의 잘못이 크다. 비난의 화살을 나눠짊어질 이들이 재가 되어 그 소년 하나가 모든 화살을 맞고 있을 뿐이지. 하룻밤에 이미 충분히 모든 것을 잃은 아이에게 말이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버지'와 같은 편에 서서 싸잡아 비난만 하지말고, 충격적인 뉴스라며 혀만 차지말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13세, 너무 어린 나이다. '방화범'이란 이름으로 남은 인생을 살라하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 아이의 행동을 감싸고 옹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존중받아보지 못한 자, 존중을 모르며, 폭력으로 성장한 자,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 밖에는 모른다. 이 미성년의 아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고, 권리가 있다. 이 아이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사회가 모조리 비난만 한다면, 이 아이는 사회에 대해 더 큰 복수심만 키울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도 그는 없다. 부모가 살아있었다해도 사랑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과 강요는 사랑이 아니니까. 또한 '존중'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가 어떠하다한들 어느 누구도 부모란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부모 '대신' 사랑을 줄 수는 없다. 부모란 그런 까탈스런 자리다. 심리학적으로 부모란 자식에게 평생 영향을 주는 그런 자리인 것이다.
그가 커서도 폭력을 일삼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란다면 그 아이에게 비난을 멈추지 마라. '패륜아'라고 욕하고, 혀를 차고, 쥐어박고, 뒷발로 걷어차고, 계속 비난하라. 먹은 먹이 그대로 그는 성장할 테니까. 하지만 난 10년 뒤, 그가 23세가 되었을 때, 올바른 판단력과 바른 심성을 가지고 성장해 있기를, 사회에 나와 멋진 일꾼이 되기를, 그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판검사는 잊어버리고 무엇을 하든간에 행복하기를,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기를 바란다. 그 아이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당신도 저와 같이 기도해주시렵니까? 같이 기도해주실분, 덧글 안 다셔도 좋습니다. 공감으로라도 답해주세요. 여러분의 공감이 그 아이가 앞으로 심신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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