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pos 쉼

책) "완전한 죽음", 불완전한 불만

번역서 제목에 대한 불만

 

드디어 1백만부가 팔렸다는 <완전한 죽음> 또는 <그 이후에>를 다 읽었다. 원제는 <Et apres>, '그 이후에'가 맞다. 책을 다 읽고나니 한글판 제목을 '완전한 죽음'이라고 달았는지 이해가 잘 안되고 있다. 번역서에서 '완전한 죽음'이라는 표현을 책 내용 어느 구석에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원서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et apres'라는 표현이 간혹 나온다.하긴 이 책이 아니더래도 'et apres? (그래서?)'는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라 특이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 제목이 의미하는 'et apres'란 '사후' '저 세상'을 의미한다. 책에 두 번쯤 반복되던 문장, '그(=죽음) 이후에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거기다가 번역서 제목에서 '완전한'이란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뭘까? 불완전한 죽음도 있다는 말이냥??? 번역서 읽으신 분들, '완전한 죽음'이란 제목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달아주시렵니까?

 

개인적인 생각인데, 뮈소 소설을 보면 원제에서는 암시적으로 감춰놓는 것을 번안제목에서 직설적으로 까발기는 걸 발견한다. 사후를 의미하는 '그 이후에'를 '완전한 죽음'으로 번역한 것도 그렇고, '너를 찾아 다시 왔어'에서 너를 '사랑'으로 기냥 받아버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로 출간한 것도 같은 맥락. 확 까발기고 나면 재미없어 지는데... '구해줘'를 '살려줘'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자. 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나치게 반복적인 설정

 

<구해줘>에 이어 읽은 <그 이후에>에서 공통점을 징하게 많이 발견한다. 첫째, 장소적 배경은 뉴욕이고, 둘째, 시간적 배경은 겨울이다. 뮈소가 뉴욕에서 갖은 알바하며 지내던 계절이 겨울 아니었나 싶다.셋째, 주인공의 직업은 의사 아니면 변호사이며, 넷째, 게다가 그들은 그 분야에서 매우 유능한 명성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섯째, 죽을 뻔한 상황을 모면하는 그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일곱째,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 사회계층의 차이때문에 심적으로 고뇌한다. 여덟째, 죽음을 예견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아홉째, 그 인물은 주인공을 심리적으로 조인다. 당연히 주인공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불철주야 정신이 없다. 열번째, 주인공은 죽음의 사자나 메신저가 '생사의 운명에 순응하라'는데 절대 순응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생사의 운명을 바꾸려고 기를 쓴다. 하긴 순응해버리면 남은 300페이지를 무슨 사건으로 엮겠나.열한번째,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설정이 꼭 나온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열한번째,알콜중독자가 나오고, 술을 꼭 개수대에 쏟아붓는걸로 정신을 차린다.

 

자, 이 장면에서 뮈소가 올해 나온 신간을 소개하면서 했던 설명을 다시 들어볼까? (엮인글 참고)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는 24시간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일 수도, 끝이 없는 하루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영원한 운명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이야기죠. 실제로 씌여진건지 아니면 삶을 돌아보는 회고인지 알 수 없어요. 뉴욕에 아주 유명한 의사를 상상했어요. 어느날 그는 인생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정말모든 걸 잃어버리죠. 명성도, 딸도, 아내도, 그리고 급기야는 살해당해 목숨까지 잃게됩니다. 죽었는데, 그런데 깨어나죠. 죽었는데, 그런데 아주 운이 좋아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게 되어 비극적인 하루를 다시 살게 됩니다.  그러고는 24시간 동안 인생 최대의 과오를 재정립하기 위해 준비하죠. 예컨데살인자의 정체를 찾으러 고심하고, 딸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주어진 24시간이 정말 행운일까? 아니면 이미 실패로 예정된 싸움일까?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에 저질러왔던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 하루에요. 무엇보다 자신의 운명보다 더 강해지는 하루죠." (인터뷰 번역: 괭이) 

 

전 소설들에서 반복되는 공통적인 요소들에다가 <그 이후에>에서 유능한 변호사, 정확히 말해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주인공 델아미코가 다시는 변호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 속으로 빠지는 걸 감안한다면 그의 신간은 안 읽어봐도 훤히 눈이 보이는 것 같다. 그의 소설적 구성이 점점 발전되어 가는걸 구석구석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구해 읽는다면 몰라도 난 기욤 뮈소의 팬이 될 것 같지 않다. <그 이후에>도 간신히 읽었다. 영화로 나온다니까 영화랑은 어떻게 다를까 비교해보려고 읽었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80페이지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 이후에>를 중간까지 읽으면서도 드는 의문이 있었다. '델아미코를 죽을 사람 앞에 데려가서 그에게 보여주는 의사의 의도는 대체 뭘까?델아미코는 왜 저래 굿리치의사에게 집착하는걸까? 무슨 선문답을 들은 듯이 의사가 몇 마디 던지면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걸까?' 중간까지 들던 의문은 결국 '델아미코는 저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 하라고 하지모'하는 포기와 함께 묻어버렸더니 그렇게 설정한 까닭이 소설 마지막 장에 나오더군. ㅋ~

 

<그 이후에> 소설과 영화 비교

 

<그 이후에>를 소설과 영화와 비교를 해보면, 굿리치 박사가 바쁜 델아미코를 데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올라가 '곧 죽을 사람'을 보여주는 장소가 영화 속에서는 만만한 뉴욕의 지하철 승강장으로 바뀌어있다. 참, 영화 아직 개봉 안됐습니다. 엮인글에 올라간 홍보용 필름 참조하세요.

 

소설에서 그려진 굿리치 의사는 상대를 압도하는 듯한 인상의 큰 덩치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배도 나오고. 델아미코의 사무실에서의첫만남에서 그는 카리스마적인 면을 보여주지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수록 그는 먹는거 좋아하는 정감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내 머리 속에는 해리 포터에서 나오는 인그리드와 닮은 인물이 그려졌다. 물론 머리 좀 깍고 면도도 하고. ^^; 반면에, 굿리치 박사 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는 영화 내내 미소 한번 짓지 않는 차가운 인상으로 나오는 것 같다. 여튼 영화로 나오면 한번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