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트러히를 지나는 고속도로 A186를 앞뒤로 막아놓고 열리는 1일 축제 라부아에리브르 전경.
파리 동쪽에 인접한 몽트러히(Montreuil)에서 고속도로 A186 2km를 앞뒤로 막아놓고 열리는 아주 재미난 에코-페스티발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이름하여 ‘La Voie est Libre’ (라 부아 에 리브르),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14명의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낸 주민 중심의 지역 페스티발이란 사실이 독특했고, 여기저기 흔치않게 보이는 태양광 발전기들을 보는 것도 무척 신선했지만 나의 이목을 가장 끌었던 것은 바로 ‘페쉬’라고 불리는 지역화폐였다.
페쉬(Pêche)는 불어로 복숭아라는 뜻인데, 어째서 복숭아가 이 동네의 지역화폐 명칭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려면 몽트러히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몽트러히가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경. 파리의 다른 주변 도시와 마찬가지로 몽트러히도 파리에 식량을 제공하는 농업지역이었고, 이곳의 특산물은 복숭아였다. 원래 복숭아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파리같은 위도에서 복숭아를 생산하기는 불가능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 ! 몽트러히 농부들은 밭에 2m 높이의 ‘복숭아 벽’을 쭉 설치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햇볕으로 따끈하게 달궈진 벽이 복숭아가 열리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게 되는 원리인데, 이 방법은 퐁텐블로 등 다른 지역에도 퍼져나갔다. 해서, 남불에서 복숭아를 운반해오는 수고 없이 파리 바로 옆에서 복숭아를 공급할 수 있었다. 루이 14세기경, 복숭아는 궁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급과일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끝나고 왕족의 특권이 사라진 뒤, 민중도 복숭아를 먹을 수 있게 되자 복숭아 밭은 크게 늘어나 19세기 말에는 복숭아 벽 길이가 총 700km, 농경면적 600 헥타르에 이르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파리 인구가 늘어가고 운반수단이 발달하자 복숭아는 남부에서 생산해 운반해서 먹고, 몽트러히의 복숭아 밭에는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자취만 남은 이 지방의 특산물인 복숭아와 복숭아 벽을 기리기 위해서 몽트러히 지역화폐의 이름을 ‘복숭아’라고 칭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 복숭아는 간데없고 벽만 남은 몽트러히의 복숭아벽.
점심을 지역화폐로 사먹어보고 싶어서 지역화폐 협회가 있는 부스까지 걸으며 중간 중간 부스에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끝에서 저끝까지 걷느라 점심시간이 다 지난 오후 2시가 되서야 지역화폐 부스 도착했다. 이 협회의 일원과 문답을 나눴다.
문 : 왜 지역화폐가 필요한가 ?
답 : 우리가 유로화로 물건을 샀다고 치자. 상인이 번 돈을 은행에 넣으면, 은행가 수중에 돈이 들어가고, 유행가들은 모아진 돈으로 실제 현금보다 9배 많은 -실존하지 않는- 돈으로 대출을 내주고, 은행 이자를 챙겨 돈을 불리고, 주식을 하고, 투기를 한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가 왔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은행가들은 은행 돈을 자기들 요트, 선박, 주택을 만드는데 탕진하고, 식량을 갖고 투기를 했다. 하지만 지역화폐를 쓰게 되면 돈의 흐름이 그런데로 흘러가지 않고, 지역으로 한정되어서 지역경제발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몽트러히의 지역화폐 페쉬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협회 부스. 안락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쓰면 '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문 : 그럼 페쉬와 교환한 유로를 일반 은행에 넣으면 안될텐데, 어디다가 유로화를 저장하나 ?
답 : La Nef(라 네프)라는 윤리적인 금융사에 입금한다. 라네프는 일반 은행처럼 주식시장이나 식량투기에 돈을 운용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에 투자한다.
그래서 한번 지역화폐를 써보기로 했다. 협회에 가입을 해야 지역화폐를 살 수 있었다. 가입비는 자유기부인데, 나는 몽트러히에서 멀리 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돈거래를 계속 할게 아닌지라 가입비 1유로를 내고 10유로에 해당하는 10페쉬를 샀다. 다시말해서 총 11유로를 지불했고, 페스티발동안 200명에 한해 1유로를 더 주는 프로모션이 있었기 때문에 11페쉬를 건내받았다.
1페쉬, 2페쉬, 5페쉬. 페쉬는 동전없이 지폐만 존재한다. 1페쉬 이하의 거스름이 필요할 때는 유로 동전이 오간다.
페쉬를 살 때 작성하는 서류에 내가 낸 유로화의 일정 퍼센테이지를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 선택하는 항목이 있었다.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건설사업에 투자한다거나, 윤리적인 상거래에 투자한다거나, 이민자들을 돕는 협회를 지원한다거나 등등등. 페쉬를 갖고 다시 저쪽 끝에 있는 식당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페쉬를 받는 부스도 있고, 받지 않는부스도 있었다. 유기농 밀을 방앗간에서 빻아 르방으로 발효시키고 손반죽을 해서 만든 진짜 수제 빵을 사먹고 싶었는데, 페쉬를 받지 않는댄다.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파리에서 왔다고 한다. 아쉽지만 난 이 페스티발에서 페쉬로만 결제를 하기로 했으니 페쉬를 받는 부스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빵과 과자를 샀다. 빳빳한 페쉬를 받으면서 ‘와~ 오늘 두번째로 받은 새 지폐에요 !’ 하며 좋아하던 상인들과 초면에 야릇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11페쉬를 다 쓰고나서야 페스티발을 떴다. 당연히 내가 페쉬로 낸 돈은 온전히 몽트러히의 지역경제로 흘러들어갔고, 윤리적인 활동을 하는 몽트러히 협회에 분담금으로 지원될 것이다.
페쉬를 받는 부스에는 '여기, 페쉬 있어요'하는 안내문을 붙인다. '비너스의 젖꼭지'라는 부스에서 복숭아향의 흰 수제맥주를 만들어 2유로에 파는데, 페쉬로 낼 수 있다.
지난 2014년 6월21일부터 통용되기 시작한 페쉬의 사용자는 총 십 만의 몽트러히 인구 중에서 약 250명. 프랑스에는 현재 30개의 지역화폐가 쓰이고 있으며 지역화폐를 고려 중인 곳이 또한 30군데라고 한다. 경제위기를 탈출하는 방안의 하나로 고안된 지역화폐와 지역경제의 앞날에 희망과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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