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rance 프랑스/Cinéma 영화

영화 '완전한 죽음 (그 이후에)'를 보고 ((스포일러!))

기욤 뮈소의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그 이후에(원제: Et Apres)>, 한국 번안 제목 <완전한 죽음> 영화판을 오늘 아침에 보고 왔습니다. 지난 수요일 1월 14일에 개봉했어요. 별 네 개 만점에 프레스 평가 1점, 관객 평가 2점을 받았습니다. 

 

원본 책을 10% 밖에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책에 써있는 내용의 90%를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거든요. 때문에영화관에 가서 보겠다는 독자들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습니다. 땅을 치고 후회하실 겁니다. '그래도 한번은 영화판을 봐야하지 않겠느냐' 하시는 독자들께는 DVD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권하고 싶어요. 기욤 뮈소의 책을 '참고'로 하되 아예 완전히 새로 썼다고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오죽하면 주인공 나단 빼고는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이 개명되었을까요. 전처 '멜로리'는 '클레어'로, 의사 '갸렛 굿리치'는 '조세프 케이'로. 그리고 나단은 이민자가 아니라 '프랑스인'으로 나오구요, 나단의 엄마도, 클레어의 가족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책 내용의 반이상이 사라진다는걸 감지하시겠죠?

 

그리고 영화 홍보 필름에 이미 나온 장면이니까 얘기를 해도 되겠지요, 나단과 전처가 만나는 사건도 완전히 개작됐습니다.책에선 나단이 물에 빠진 멜로리를 구해주고 난 다음 익사할 뻔하여 코마상태에 빠지는데, 영화에선 클레어가 물가에 나있는 다리(?)에서 발을 헛디더 물에 빠지지만 다리를 붙잡고 있어요. 나단에게 '가서 우리 부모님을 불러와'라고 말하자 나단은 디립다 뜁니다. 그러다 숲이 끝나고 도로가 나타나는 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에 빠지죠. 기욤의 책 <완전한 죽음> 뿐만이 아니라 <구해줘>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과 사가 갈라지는 경계에서 생명을 구해준 여인과 평생 사랑하게 되는 운명에 빠지는 걸로 그려지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완전히 개작했어요. 책에서 나타나는 긴박감과 긴장감은 영화 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굿리치 의사도 마찬가지. 책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요.  

 

원본보다 나은 영화가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기는 한데, 그럼 책을 안 읽고보면 후회하지 않을까? 역시 아닙니다.이 영화에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변화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심리적 갈등의 원인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책 얘기를 하게 되는데... 원저에선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유능하고 일 많은 변호사 나단이 갑작스런 의사의 출현으로인해 심리적 소용돌이에 빠집니다. 어렵게 잡았던직업상의 모든 약속을 무차별로 캔슬시키고 소속 법률사무소에 예고없이 절박한 2주간의 휴가를 얻어내지요. 근데 영화상에서는 그런 절박함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미스테리한 의사가 결국 누군지를 알게 되는 장면도 의사의 한 마디로 드러내 버림으로써 관객에게 서스펜스 건더기 하나 남겨주지 않았습니다.또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과의 대화가 시종일관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전반적으로 -필요이상으로- 무거워요. 로망 뒤리는 영화 내내 낮은 톤으로 차갑게 얘기합니다.책에 나타나는 긴박감이 송두리채 빠지고 지루함만 남아있는 느낌이에요.그렇다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도 아닌데 말이죠. 큰 배우들을 기용한다고 잘 된 영화는 아니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네요.

 

감독: Gilles Bourdos

배우: Romain Duris, John Malkovich, Evangeline Lilly

 

참, 이 영화 초반에 거리장면 나올 때, 뒤에 지나가는 버스에 Richard Serra 전시광고 포스터가 붙어있어요. '얼마 전에 파리에서 크게 전시했을 때 봤지롱~ '싶어 반가왔더랬지요. ^^ 리차드 세라 전시에 대한 내용은 엮인글을 참고하세요.

 

자, 그럼 다다음 문단부터는 스포일러가 본격적으로 무쟈게 깔려있으니 이미 읽은 책과 영화판을 비교해보고 싶으신 외에는 스크롤을 삼가해주세요. (주의 : 스포일러 무진장 많음!!!)

--------------------------------

 

리뷰시작> 형편없는 평가를 받은 이 영화를 보러가나.. 마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영화관 갈 시간이 없는 처지에, '의무감'에 내 돈 내고 보러가나.. 마나.. 결국 애 아빠한테 애 맡겨놓고 바람 세게 불고 빗방울도 조금 떨어지는 일요일 아침, 헝그리 블로거 정신으로 혼자 나가 보고 왔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는 6주째 상영되고 있는 코엔형제의 Burn after Reading이나 데니 보일의 화제작 Slumdog Millionaire 였는데 말이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ㅜㅜ 

 

(주의: 바로 다음 줄부터 스포일러 천지임!!! 책을 읽었다해도 영화판 스토리를 알고 싶지 않다는 분은 당장 이 창을 닫아주세요.)

================================

 

원본과 똑같은 부분은 아래 11가지 요소들뿐(!)입니다. 겨우!!! :

1. 나단은 뉴욕에 사는 변호사며, 그는 이혼을 했고, 딸이 하나 있다.

 

2. 나단의 둘째 아기(아들)는 자다가 죽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일에 파묻히고,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는 등 하여 이혼하게 된다. / 차이는 원본에는 아기가 엎드려 자다가 죽는데, 영화 속에서는 아이가 누운 채로 죽어 있어요. 죽은 사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

 

3. 어느날 왠 의사가 찾아와 바빠죽겠는 나단을 붙들고 벽에 걸린 백조 사진을 보며 백조는 켈트의 전설 속에서 죽음과 관련이 있지, 어쩌씨구리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사라진다.

 

4. 나단은 8살 때 죽을 뻔했다가 코마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다.

 

5. 그때 나단을 상담했던 의사가 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던 의사다.

 

6. 의사는 죽을 사람을 보는 능력이 있으며, 사별했고,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을 돌보는 센터를 운영한다.

 

7. 뉴저지의 바에서 일하는 여인은 아버지와 오랜만에 상봉하고, 어린 아이가 있으며, 나단은 여인에게 목돈을 준다. 그리고 목돈을 주러 은행에 가는 날, 여인은 무차별 총격의 희생자가 된다.

 

8. 나단이 딸을 데리러 의사와 함께 전처네로 온다.

 

9. 딸과 의사와 함께 뉴욕가는 공항으로 가다가 전처를 다시 보겠다고 돌아간다.

 

10. 전처 주위에 빛이 도는 걸 목격하게 된다.

 

11. 나단은 메신저가 되고 전처에게 돌아온다.

 

 

나머지는 너무나 달라서 하나하나 세자면 날이 샐 듯.. ㅠㅠ

 

1. 부인의 이름은 '멜로리'가 아니라 '클레르'이며, (딸 이름은 원본도 영화에서도 기억이 가물가물)

 

2. 의사의 이름은 '갸렛 굿리치'가 아니라 '케이(Kay)'로 나오고,

 

3. 부인 가족과 나단의 가족 이야기를 하/나/도/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언급도 없고, 그러니 그와 관계된 모든 이야기들이 싸그리 사라졌겠죠? 뉴욕의 아파트를 갖게 된 사연이나 죽자사자 유명한 변호사가 되려고 발버둥치게 된 사연 등등 모조리 안 나옵니다. 장인어른이 알콜중독이 되어 자동차 사고를 내는 이야기도 당근 끼어들 자리가 없구요. 그걸 위장하려다가 주유소에서 협박팩스를 넣는 장면도, 그걸 절친한 비서와 협박에 협박으로 대응하는 장면도 다 없습니다. 

 

4. 나단은 프랑스인이며, (으흠???) 유능한 완벽주의자 변호사라는 점은 전혀 언급이 없슴.

 

5. 원본에는 안 나오든데, 아침에 일어나 나단이 손이 저린다. 과로 때문이려니..하는 멘트가 하나 지나감.

 

6. 나단과 일하는데 죽이 잘 맞아 뉴욕까지 따라오게 된 비서는 영화 초반에 '의사가 찾아왔다, 딸이 전화했다'하는 장면 외에는 언급이 없고,

 

7. 어렸을 적에 물에 빠진 전처를 구해내고나서 익사할 뻔한 이야기도 완전히 새로 썼어요. 어느 여자애가 물가에서 놀다가 다리를 헛디어 물에 빠질 뻔하고, 불어만 하는 -그니까 서로 말이 안 통하는- 남자아이가 여자애를 구하려다가 여자애 부모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러 뜁니다. 뛰다가 숲에서 도로로 통하는 지점에서 그만 차에 치어 코마상태에 빠지죠. 둘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 여자아이는 코마상태에 빠진 남자아이를 매일매일 찾아옵니다.

 

8. 굿리치의사가 나단을 데리고 메신저로서의 능력을 보이는 첫장면이 원본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인데, 영화 상에서는 뉴욕의 한 전철 승강장임. 그것도 나단이 '헛소리'로 취급하고 전철역에서 나오려고 하는걸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 운명처럼 자살장면을 목격하게 됨.

 

9. 두 번째로 굿리치는 뉴저지의 한 바에서 일하는 여인을 찾아가보라고 하죠. 이 여인에 대한 스토리로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뉴저지의 바에서 일하는건 맞는데, 영화 속에서는 나단의 절친한 대학 친구로 나옵니다 (황당)! 여자가 한눈에 바로 나단을 알아보죠. 러시아인인 여자의 아버지는 원본에서처럼 감옥에서 바로 나온게 아니고, 캐나다에 사는데 딸과 연락이 끊긴 채로 있다가 케이 의사가 쌍방에게 사진과 연락처를 편지로 주어 연결을 시켜주지요.

 

10. 이 여자의 아버지가 먼저 죽는 것은 맞습니다만, 영화 속에는 사인이 전혀 다르죠. 여인의 친구가 출산한 걸 축하하려고 러시아인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데 나단이 초대도 없이 나타납니다. 파티 도중에 자꾸 전기가 나가자 여인은 두꺼비집을 만지요. 나단이 '위험하니 손대지 마라. 부탁이다'. 불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을 때, 여인의 아버지가 두꺼비집을 만졌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11. 여인에게 돈을 주기로 한 나단은 은행에 동행하는데, 원본에서는 여인이 아이와 함께 은행에 오고, 구급차 팀들이 엄마잃은 아이를 데리고 가지요. 근데 영화에서는 여인이 나단과 둘이 은행에 옵니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얘기가 없지요.

 

12. 이혼한 전처 주위를 도는 부자 친구(이름이???)인 대학동창도 전혀 안 나옵니다.

 

13. 말로리는 사회활동에 열심인데, 영화 속의 전처는 식물만 돌보는 자연주의자에요.

 

14. 의사 케이가 전처의 모친을 찾아가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본에는 언급도 없는데..

 

15. 딸래미를 데리고 오는 날, 원본상에는 하늘이 어둡고 비가 오는데, 영화촬영장이 비 한 번 안 내리는 지역인가 봅디다.

 

16. 먹성좋은 의사의 성격이 영화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의사네 집이 나오는 일도 없어요.

 

17. 나단이 어릴 때 치료했던 의사였다는 사실을 의사가 직접 말로 썰합니다.

 

18. 딸을 데리러 '같이 가자'는 제안에 원본에선 의사가 '내가 왜???' 하는데, 영화상에선 아무런 태클걸지 않고 바로 동행합니다.

 

19. 원본에서는 딸래미를 의사에게 맡겨 뉴욕으로 먼저 가게하고, 나단은 전처에게 돌아와 쌓인 얘기를 하고 그날 밤비행기로 뉴욕에 오지요. 근데 영화는 이걸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딸래미와 함께 전처에게로 돌아오고, 의사에게 먼저 뉴욕으로 가라합니다. 의사는 뉴욕으로 안 가고 공항 근처 모텔에서 묵지요. 나단은 전처와 얘기를 나눈 뒤, 딸래미와 함께 그 집에서 낡은 의자에 페인팅을 하며 '세월아~ 가거라~' 느긋하게 지냅니다. 에이전트의 비서가 전처네 집으로 전화해서 응답기에 나단을 찾는 메시지를 남기는 걸 빼면 뉴욕은 더이상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아요.

 

20. 원본에서는 창문 앞에 서있는 전처 주위에 밝은 빛이 도는 걸 역광으로 착각하지요. 그리고 곧 전처가 외출을 합니다. 근데, 영화 속에서는 햇빛이 쏟아지는 집 베란다에서화초를 돌보는 전처 주위로 밝은 빛이 도는 걸 보자마자 '앗, 이거 의사가 말한 바로 그 밝은 빛!!!'이라는 걸 알아채고 의사에게 바로 전화를 합니다. 의사가 뉴욕이 아니라 공항 근처 모텔에 있다고하자 부인에게는 말도하지 않지않고 차를 타고 사라지지요.

 

16. 원본에서는 의사를 찾아가 자신이 메신저가 됐다는 걸 알게 되고는 생이 얼마 안 남은 전처를 마지막까지 사랑해주리라 마음먹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끝이 나는데, 영화 속에서는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가 돌아와서 전처와 창밖을 보며 대화하며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