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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

낙태, 임신, 그리고 피임

<'독 사탕' 거부한 산부인과 의사들>이라는 기사(2009년 11월 17일)를 읽고 씁니다.
한국의 낙태율을 줄이려면 임신과 피임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 교황은 기를 쓰고 반대를 하겠지만, 교황이 남녀의 잠자리를 '주의 이름으로' 갈라놓지 못하는 이상 생명을 파괴하고 여성의 몸을 해치는 낙태수술과 AIDS를 줄일 수 있는 1차적인 방법은 피임을 보급시키는 길밖에 없다. 내가 교황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점은 '임신이 되었으면 낳으라'고 권한다는 것이고, 교황과 반대인 점은 '임신을 원치 않는다면 성관계를 말라'가 아니라 '관계를 하되 피임을 반드시 해라'라는 점이다.

관련기사 : <'독 사탕' 거부한 산부인과 의사들>,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20091117091114785&p=sisain 


1. 임신

첫 임신기간 동안 블로그에 임신에 대한 포스팅을 많이 올렸는데, 그때 공개로 주고 받았던 의견을 보며 느꼈던 것은 한국은 임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이 놀라울 정도로 적으며, 임산부에 대한 대우와 시각이 퍽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거다.

남 말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아서 성교육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지만 나 역시도 임신과 피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성교육도 한계가 있었다. 어느날 선생님들은 여학생만 불러 강당에 모이게 했다.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남학생들은 왜 저들은 제외가 되는 지도 몰랐다. 강당 안에선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된 성교육용 애니메이션을 상영해 주었다. 월경부터 임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당을 나와 '너네 뭐 했어? 뭐 봤어?' 남자 아이들의 질문에 여자 아이들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성교육은 받았으니 여자들만 받았던 경고성(!) 교육이었고,  말 못 하고 '쉬~쉬~'해야했던 건 성은 '말하면 안되는 타부'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회적 의식에 흠뻑 젖었던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래 전 내가 어릴 때, 성교육 비디오를 보고 나와서 쉬~쉬~ 했었는데, 한 세대가 훨씬 넘은 지금에도 다 큰 어른들이 '쉬~ 쉬~'하며 산부인과를 찾는다. 몰래 낙태를 하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월경에 대해서 배웠어도 임신에 대해선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임신이 되는 정도'만 알고 있지 임신 몇 개월이면 태아가 얼마나 성장해있고, 임산부는 어떤 증상을 느끼는 지 어떤 성교육 시간에도 배우지 못했다. 피임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라곤 겨우 콘돔. 만일 우리가 성교육 시간에 여학생 뿐만 아니라 남학생도 함께 임신에 대해서, 태아에 대해서, 산모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조금만 깊게 배웠더라면 다 큰 어른들이 실수로(!) 가진 아이를 '지우러' 산부인과 수술실을 두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혼전성관계에 대해 한국 남녀들도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예전보다 훨씬 개방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한 인식이 고작 '섹스'라는 1차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다.  
 
내가 프랑스에서 
임신을 겪으면서 놀랐던 건 미혼여성 뿐만 아니라 미혼남성도 임신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임신 중에 임신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의 기폭이 크고 심리적으로 불안정 상태에 처해진다거나, 임신 초기에 쉽게 피곤하다거나, 5개월이 되면 태동이 느껴진다거나, 임신 중에는 소변이 쉽게 마려워지고 오래 참을 수 없다는 등의 아주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나는 임신 중에 경험으로, 임신가이드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프랑스는 미혼여성도, 미혼남성도 알고 있었다. "아니,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어?"하고 물어보니까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웠다는거다. 학교에서! 남학생, 여학생 모두 다!

물론 프랑스인들 모~~두가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거나, 화장실에서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해주는 이들은 십중팔구 임신을 몸으로 겪어본 여성들이었다. 반면에 적어도 
임산부나 애기 엄마를 홀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와 같은 기간에 한국에서 임신했던 산모의 경험에 의하면, 버스에서 노약자 자리에 앉았다가 한 어르신으로부터 꿀밤을 얻어맞고 일어나야 했다고 한다.

 

2. 낙태

원치않는 임신을 원상복귀(?) 시키려는 방편으로 미혼이든 기혼이든 낙태를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원상복귀는 사실 안된다. 임신호르몬이 이미 분비되었던, 낙태수술로 몸에 칼을 댄 여성의 몸도 완벽한 원상복귀는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았나 죽었나 알아보는 결정적인 근거인 심장은 임신 첫주, 태아가 자궁에 착상이 되자마자부터 뛰기 시작한다. 팔다리, 눈코입, 머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제~~일 먼저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가슴이 뭉클하기까지하다. 그 심장이 뛰는 태아를 긁어 버리고 나면 심장박동은 멈춘다. 결코 원상복귀는 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기혼자의 낙태가 17만, 미혼자의 낙태가 14만이라고 한다. 이유가 어떻게 되든 '어쩌다 애가 생기면 지운다'는 생각은 어린아이같은 생각이다. 성인이라면 일을 저지르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둬야한다. 뒷일 생각않고 일을 저지르는건 어린애나 똑같다. 관계는 맺고 싶은데 아이는 원치 않는다면 -100% 피임을 보장할 수 있는 피임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피임을 하고 관계를 가져야한다.

아들이 아니라서 지운다? '다른 이유는 없어. 당신은 단지 여자니까 죽어줘야겠어'라고 한다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렇다.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낙태를 시킨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무력한 아기에게 어른이란 이름으로 무자비한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거다. 당신이 태어날 때, 성별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그 아이도 자신의 성별로 차별받아선 안된다. 병아리 성감별하듯이 아이의 성별로 낙태냐 출산이냐를 결정하지 말라.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듯 태아의 생명도 소중한 것.


3. 피임

"넌 어떤 피임을 하니?" 
프랑스에서는 여성들끼리 어렵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소재 중 하나다. 남자친구가 있는 미혼여성이라면 -기혼은 말할 것도 없고- 피임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문화적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국 미혼남녀들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해서 관계를 갖지 않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혼 전에 언젠가 냉이 있어서 '산부인과에 가봐야겠다'고 했다가 엄마한테 혼이 난 적이 있다.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미혼여성이 산부인과 문턱을 드나드는 건 수치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근데 이 나라는 보니까 월경을 시작하거나 사춘기가 되면 산부인과를 보러가는게 매우 자연스럽더라는거다. 우리 옆집에 살던 애기 엄마의 경우, 그녀가 사춘기 때부터 15년 넘게 상담해왔는데, 큰 병원에서 산과 수술을 하기도 하는 경력있는 의사라서 그녀의 엄마도, 여동생도 다 그 의사를 수 십 년 보아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신상에 관해선 절대 비밀로 부치는 지라 믿을만하고 능력있는 의사라며 '좋은 산부인과의를 아느냐'고 물어오는 이들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당연히 피임에 대한 의논 상대는 아는게 비슷비슷한 또래 친구들끼리 뒤에서 소근소근~이 아니라 전문가와 상의하게 되더라는 거다.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다.
출산을 한 바로 다음 날, 병원에서 산모에게 "어떤 피임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결정하셨습니까?"라고 물어온다. 아이의 터울과 피임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병원에 머무는 동안 생각해보고 질문 할 시간이 많이 있다. 

어떤 피임방법은 출산 후 바로 쓸 수 있는 피임이 있고,
자궁에 장착하는 피임법은 자궁이 원래의 크기대로 돌아간 후, 산모의 건강 회복을 보고나서 적용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산모가 애기와 함께 병원 문을 나가기 전에 피임처방전을 써준다. 결정된 피임법을 사용하기 전까지 임시적인 피임법이나 피임제를 알려주고 처방해준다. 만일 퇴원할 때까지 피임법을 결정하지 못했다면 출산 한 달 후 산부인과 의사에게 건강진찰을 받으러 갈 때, 산부인과가 처방전을 써준다.  

피임제 또는 피임도구 중에는 보험으로 환불되는 것이 있고, 환불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알약이나 1회성, 단기 피임도구는 당연히 환불이 안되고, 6개월 이상의 장기 피임도구는 보험으로 100% 환불이 된다.


글을 마치며 : 미래로 가는 여성

프랑스에 들어오는 한국 영화들 보면 관객서비스를 위함인지 적나라하게 신음소리내며 질펀하게 섹스 장면 하나 안 들어가는 영화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새 영화에서 어느 여배우가 옷을 벗었네, 노출이 과감하네, 누구랑 누구랑 키스를 한다네... 얼레리 꼴레리 호들갑을 떠며 홍보하고 떠벌리는 문화에서는 여성은 성적 유희 대상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임산부나 엄마란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성숙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기 힘들다.
그런 사회는 사이즈 44에 쭉쭉빵빵 날씬한 영계나 찾고, 여성은 예뻐야 하며, 애교와 내숭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부지불식 중에 쇄놰받는다. 그런 사회는 임산부나 엄마는 상대적으로 '아줌마'나 '애엄마'로 치부해 하루 아침에 '똥차' 취급한다. '키 180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고 부끄럼없이 뱉어내는 대학물 헛먹은 여성은 불행하게도 30대 이상의 미혼, 결혼한 여성, 산모를 '한물간 똥차'라고 치부하는 남성들하고 전혀 다르지 않은 레벨에서 놀며, 그들과 같은 열차를 타고 있는 거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뻔뻔할 수 있도록 방치했는가? 교육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은 임신과 피임에 대한 교육을 보급시키고,
성에 대한 인식을 180도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