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부터 신정까지 서구에서는 고기 소비가 연중 최고를 기록하는 시기입니다.
비건인데도 1년에 한번, 크리스마스에는 고기와 생선을 먹는다는 이도 있어요.
그만큼 갖가지 종류의 고기와 갑각류가 시장에 쏟아져 나옵니다.
기른 가축뿐만 아니라 사냥해서 잡은 조류와 네발짐승들도 연말에만 잠깐 특별히 나오기도 합니다.
다른 서구도 그렇겠지만 프랑스에선 연말에 고기가 빠진 파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어요.
저희 동네 고기집과 빵집들도 가게 밖에 줄이 5미터씩 나와있었어요. 점심, 저녁으로 말입니다.
저는 멀찌기서 남의 일처럼 보고 지나갔네요.
'무슨 고기를 먹으려고 줄까지 저래 서고 그러나...' 하면서. ㅎㅎ
근데, 문제는 고기를 빼고, 생선을 빼고, 어떻게 2010년의 마지막 특별식사를 준비하느냐.... ㅠㅠ
곤경에 처했습니다.
평범한 식사는 채식으로 문제없이 해먹었는데,
뭔가 특별한, 특별한 뭔가를 준비해야하는데 뭘 할 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궁리.. 궁리.. 궁리... 끝에 각종 야채와 표고버섯, 석이버섯를 썰어 당면 한 봉지 다 풀어서 잡채를 했어요.
한국식 잔치음식 아닙니까? ㅎㅎ
'애 둘 보느라 많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도 대가며 '원래는 디저트로 떡도 하려고 했는데...' ^^;
1월 1일, 새해 첫날엔 남편에게 애들을 맡기고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손 디따 많이 쪼물락거리게 만드는 비건요리를 하나 찾아서 시도했습니다.
이름하여 'Roulé de lentilles fourré aux châtaignes' !
해석을 하자면 '밤으로 둘둘 싼 렌즈콩말이에요.
프랑스 요리들은 제목만 봐도 대강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눈에 들어오죠? ^^
이게 어떤 요리일까 궁금하실텐데
작은애 기저귀 갈고, 큰애 목욕시키고, 작은애 이유식 먹이고, 하느라 정신없어 증명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네요. 흑흑~
인터넷엔 레시피만 있고 사진은 없구요.
궁금해하실 비건들을 위해서 어떤건지 설명을 하면...
야채를 섞은 껍질콩 된죽과 밤으로 만든 된죽을 사각형으로 넓게 차례차례 두 겹으로 깐 뒤에
김밥처럼 둘둘말아요. 단면에서 보면 두 개의 회오리가 돌아가는 모양이 나오죠.
이걸 오븐에서 25분 정도 살짝 익혀줍니다.
재료들은 이미 그 전에 다 익히지만 말이모양이 좀더 단단해지라고 오븐에서 사우나 시키는거에요.
디저트로는 '티라미수'를 하려고 했는데, 위에 요리 하나 하느라 시간이 훨러덩~ 가버려서
티라미수는 1월 2일로 넘어갔습니다. ㅋㅋ
주재료인 이태리 치즈 mascarpone를 사려고 수퍼에 나갔다가 동네를 한 바퀴 뒤졌어요. ㅠㅠ
아니 세상에 모두가 다 티라미수를 디저트로 하려고 했다는 겁니까 뭡니까?
장장 수퍼 3개를 뒤져서 마지막 하나 남은(!) 마스카르포네를 겨우 구할 수 있었어요. 휴우~
앞집에 사는 이태리 여자를 우연히 만나 그녀로부터 정통(!) 이탈리안 티라미수 레시피도 손에 구했지요! 앗싸~
하지만 큰애도 먹을꺼라 커피 대신 대체할 무엇을 찾아야했어요.
티라미수 레시피만 서너 개 찾아다놓고 연구를 했습니다.
안에 들어가는 비스켓은 애기 주려고 사둔 유기농 비스켓 쓱싹~하고. ㅠㅠㅋ
이 역시도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딸이 달려들어 먹는 바람에 증명사진이 없어요. ㅠㅠ
설탕을 레시피보다 훨씬 적게 넣었음에도 맛은 좋았는데, 마스카르포네가 너무 기름져서 저한테는 느끼했어요.
이태리이웃이 준 레시피에서 엄청난 양의 설탕도 1ts으로 줄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날계란 들어가는 것도 느끼할 것 같아서 뺐는데도 지나치게 단건 아닌데
거위간요리만큼이나 느끼해서 속이 더부룩하더군요. 아.. 먹고나서 뱃속에서의 찝찝함. 으..
마스카르포네는 버터만큼 유지방이 많은 것 같아요.
10년 전 이태리 혈통이 섞인 친구가 고모한테 배운 레시피라며 저희집에서 열린 파티에 들고 왔던 그 맛은 아니었지만
딸애가 잘 퍼먹어주니 '합격'으로 봐야겠지요.
아.... 그 친구가 만들어준 티라미수는 진정코 환상이었어라~!
마스카르포네가 너무 느끼해서 다음번엔 비건 티라미수를 해볼랍니다.
고기도, 생선도, 계란도 안 먹는 비건들은 연말파티를 어떻게 하는 지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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