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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Voyage 여행

크레타 여행기 (2) - 길 위에서 만나는 만남과 깨달음, 그것이 여행이고 인생인 것을

자로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그곳에서 내 여행 역사 중 단연코 최고로 꼽는 아침식사를 했다.






영어로 어떤 재료가 든 요리인지 일일이 설명하시는 주방 언니. 



이게 아침상이다! 끼약~~~~ 


사진 찍는동안 손대지 말랬는데도 먹는걸 보고 정신을 잃은 우리 막내. 앞으로도 계속 음식 사진을 보면 저 노무자슥 손이 안 들어간 사진이 없다. '그리스인들은 아침식사를 다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주방언니 왈, "그리스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은 맞지만 이걸 다 먹진 않고, 이들 중 몇 가지를 먹는다. 근데 당신들은 하루만 자고 가니 맛보라고 다 내놓는거다." 무한감동!




짜꾸가 날 정도로 먹고 남겼는데 주방언니가 오더니 사과 3개랑 사진 속의 종이 봉투를 한 장 준다. 남은거 싸갖고 가서 점심에 먹으란다! 무/한/감/동! 사진 오른편에 빈 접시 쌓은거 보이는가? 싸갖고 간 음식은 우리가 길에서 점심식사로 때우기 충분할 정도였다.


이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카테리나의 무릎에 아이 둘을 앉히고 넷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카테리나는 연신 그리스어로 아이들에게 솰라솰라~ (동영상으로 찍어둠) 프랑스식 뽀뽀와 포옹을 하고 이별의 정을 나누는데, 카테리나가 뭐라고 하면서 손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골뱅이 모양의 제스춰를 했다. '날아간다(voler)'는 불어와 비슷한 단어였다. 하늘로 날아오를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자로스 주택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카테리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고르티나. 기원 전 3000년 말경~기원 전 2000년 초의 도시 유적인 고르티나(또는 고르틴 ; Gortyna, Gortyne, Gortys)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목이라든지 가이드북에 상세한 위치 안내가 없고, 네이게이터의 주변 목록 검색에서도 이곳은 나오지 않았다. Tomtom 네비양의 최근 크레타 데이타를 다운받은건데, 이 데이타가 기본적으로 허술하다. 예컨대, 가라고 표시가 나오는데 길이 없거나 막힌 경우가 있었고, 오른쪽으로 돌아야하는데 '좌회전'이라고 안내가 나오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그리스어 지명 표기 자체에 알파벳이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도에 적힌 지명, 가이드북에 적힌 지명, 네비양에 적힌 지명의 철자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예를 들면, 지난 번 포스팅에서 소개한 이라크리오는 Heraklion, Iraklio의 두 개 표기가 있고, 고르티나 지명은 Gortyna, Gortyne, Gortys 세 가지가 있다.



고르티나 찾다가 얼떨결에 들른 아지데카(Aghii Deka)의 한 교회.


4세기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의 지하무덤이 있었다.




'여기가 아닌게벼~'하고 나와 한참을 찾다가 포기할 무렵,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해서 겨우 찾은 고르티나! 가이드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행 정보는 안 올리는데, 헤매고 헤매다 결국 포기하려다가 겨우 찾은 이 곳을 찾아가는 방법을 적어두는게 다음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배낭여행객이라면 페스토스(Festos)행 버스를 타고 고르틴에서 내려 언덕쪽으로 10분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어린애 둘 데리고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우리같은 경우는 Aghii Deka에서 Mitropoli로 가는 길에 Mitropoli 방면 안내표시판 나오면 오른편 공터에 차를 세우면 된다. 다시 말해서 도로가 T자형으로 꺽어지는 곳에 T자의 바로 머리 부분에 있다.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이 없고, 돌이 널부러진 유적지가 보이면 바로 그곳!

왼쪽 페이지 가운데 v표 한 곳이 고르티나.

아지데카는 동쪽에, 미트로폴리는 남쪽에 있다. 도로가 꺽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 고르티나 유적지가 있다. 





* 고르티나 (B.C. 3000 말경이나 B.C. 2000 초기)

입구가 이래갖고 눈에 띄겠냐고요... ㅠㅠ 파란 글씨마저 그림자와 어울렁 더울렁.
이 근처를 차 타고 지나다가 오른편에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공터가 보인다하면 바로 그곳임!






원형 극장 뒤편에 돌에 새긴 고르틴 법문서가 있다.

(클릭하면 제가 놓친 고르틴 법문서를 찍은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 올리브나무

크레타 전국에 올리브 나무 재배지가 널렸다. 전적으로 올리브유로 요리하고, 올리브 열매를 꼭 샐러드에 넣어먹는 그리스인들에겐 올리브 나무는 삶 자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 수많은 올리브 재배지에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은 한결같이 키가 작다. 열매를 잘 맺는 기간동안 심었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뽑아버리는걸까? 아니면 나이든 나무는 물을 많이 먹기 때문일까? 크레타 도심이든 올리브 재배지 산에까지 물주는 호스가 뻗어있는걸 보며 낮아지는 지하수위가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런 반면, 백 년 이상된 올리브 나무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처럼 나이 많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 물을 굳이 따로 줄 필요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영험한 기를 뿜는 오래된 올리브나무는 프랑스 남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무 안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번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는 신비한 플라타너스.

이 나무 밑에서 제우스(Zeus)가 에우로페(Europe)와 사랑을 속삭였다고.. 



자, 그럼 이제 히피의 해변 마탈라(Matala)에서 해수욕이나 해볼까? 10월 하순에?!











* 고속도로가 없는 섬

그러고보니 크레타엔 고속도로가 없다. '적어도 해변가를 따라 고속도로를 뚫으면 도시간 이동이 수월할텐데 왜 안 하지?' 싶었다. 하지만 하늘과 경계가 없는 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 그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그 자체가 크레타 여행이라는걸 깨닫는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산과 바다를 끼고 운전하다가 길가에 염소떼가 나오면 속도 늦추며 늦게 가면 되지,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는가? 인생도 과정인 것. 목적지에 누가 빨리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만남과 깨달음이 곧 인생 그 자체인걸.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만끽하고 음미하며 몰락하는 그리스에서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크레타를 느끼는 것이 내겐 소중했다.



여자의 젖가슴같은 섬



불새와 함께 지는 노을




글과 사진이 맘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추천 좀.. 긴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