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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

젊게 사는 노인들

지난 여름, 한국에 다녀왔다. 5년만에 다시 뵙는 부모님을 보니 많이 늙으셨더라. 겉모양은 별로 모르겠는데 시력과 기억력이 감퇴된다거나, 몸이 여기저기 고장난다거나 하는 등 속이 많이 늙으신 것 같다. 시부모님도 친정부모와 나이가 비슷한데 그 정도로 늙었다는 생각을 안 했었다. 자주 뵈서 그런가?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몸에 좋다는거 따져먹고 골라먹고 찾아먹는 쪽은 오히려 친정쪽이다. 그런거 무시하고 사시는 시어머니가 친정엄마보다 몸도 마음도 더 젊게 사신다.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늙었으면 좋을까?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바로 옆에 사는 칠십되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근데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쓰기가 꺼려질 정도로 그들은 늘 활기차게 산다. 1년의 절반은 여행다니느라 보기가 힘들다. 울엄마는 '나도 돈만 있음 놀러다니겠다'라고 하시는데 늙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삶은 돈의 유무만은 아닌 것 같다. 옆집 노부부는 연극과 오페라를 주말마다 보러다닌다. 물론 벌어놓은 돈이 있으니까 별장에도 가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옆집 노부부나 시부모님하고 대화할 때보면, 나이 많은 노인과 대화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주름살 하나 없이 정말로 젊기 때문이 아니라 난 그들이 유쾌하게 사는 삶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옆집 노부부도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먹거나 몸에 좋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울 엄마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훨씬 더 젊게 살고 있다. 이유가 뭘까?

남편과 나의 조부모들의 수명을 비교해봤다. 남편의 조부모의 수명이 더 길었다. 그 비교에 의하면, '몸은 좋은거'라며 엄마 부엌에 있는 흑초를 한 명 들고나온 나의 수명은 남편보다 짧아야 되는 거였다. 오래 사는, 아니 장수하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젊게 사는 비결이 뭘까?

유학시절, 방학동안 프랑스 노인들을 위해 일한 적이 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청소도 해주고, 장도 봐주고 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들여다본 프랑스 노인들도 천차만별이었다. 우리 시부모, 옆집 부부처럼 사는 이들도 있지만 외출도 못하고 쓸쓸하고 외롭게, 그야말로 시체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에도 우리 옆집 노부부처럼 멋지게 살아가는 노인들도 있을테고,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를 일어나라고 구박주며 노인네 냄새 풀풀 풍기며 살아가는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노인들이 한국 노인보다 젊게 산다는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건 아니다.

몸에 좋다는 거 골라먹지 않으면서도 한층 더 젊게 사는 이유, 그게 뭘까? 난 그게 궁금해졌다. 왜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친정부모는 시부모보다 더 늙은걸까? 남편하고 얘기를 해봤다. 한국을 속속들이 모르는 남편에게는 한국과 프랑스의 노인 비교라는게 불가능했다. 우리 부모를 한국노인의 대표로, 시부모를 프랑스노인의 대표로 세운다는 설정이 무모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직 이 화두는 ing 임으로 계속 고민해봐야겠지만 현재 내가 도달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스스로 늙었다고 여기는만큼 더 늙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노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늙었다'고 여긴다. 우리 부모님하고 통화를 하다보면 '늙어서 그래'라는 표현을 상당히 -정확히 말하면 질리도록- 많이 들었다. 반면에, 시부모님은 이빨이 건들거려 치과에 가도, 발이 아파서 병원에 가도 말끝에 '늙어서그래'라는 토를 달지 않으셨다.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인시키고, 확인받고, 그래서 우대받고싶다는 그 생각이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도 나이들면/늙어보면 알아'라는 표현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더 빨리 늙을꺼라고 확신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내가 아름답게 늙을까? 먼 훗날 내 자식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나를 찾아보러오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가게할 수 있을까? 모두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이 글에 마무리는 안 지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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