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로 2008. 9. 16. 09:03


파리 살면서 <파리> 영화를 이제사 봤습니다. 영화평이라 하기는 그렇고 여기 사는 사람으로서 왠지모를 의무감 비스무리한 후기를 올려봅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텍사스> 등등파리가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들어갔거나 <아멜리에> <Un long dimanche des fiancailles>처럼 파리가 주배경으로 등장하는 등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참 많습니다.다 못 봤습니다만..참고로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는 여직껏 못 봤습니다. Video Futur 비됴샵에 없네요. 조만간 인터넷 영화대여샵을 통해서 수중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여튼 <파리>에는 등장인물이 산만스럽게 많습니다. 굵게 두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지요. 심장병으로 죽을 날이 하루 이틀 남은 물랑루즈의 댄서 삐에르(로망 뒤리)와 파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는 파리1대학 역사학자 롤렁 베르너이(파브리스 루치니). 삐에르와 그 주변인물은 평범한 서민층을 묘사하고, 롤렁은 'classe'라 불리는 상위층을 묘사하고 있더군요. 둘 다 제가 좋아하는 남자배우여서 -특히 파브리스 뤼시니는 제가 다섯손가락에 손꼽는 좋아하는 프랑스 남자배우여서요-아주 영화 즐겁게 봤습니다. 음핫핫~ 작설하고... 이 영화, 두 가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 정말 파리를 잘 묘사했을까?

네, 파리를 잘 그렸습니다. 제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집이 없이 떠도는 SDF(Sans Domicile Fixe)로부터 SDF를 사회 시스템으로 동皐獵?assistant social(줄리에뜨 비노쉬 분), 아프리카에서 건너오는 불법이민자, 물랑 루즈의 댄서, 직원 개무시하고 수다스러운 빵집 주인, 새벽에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받아다가 일주일에 1~2번 열리는 장에서 소매로 파는 사람들, 패션쇼 모델들, 건축가, 대학교수, 허벌나게 깔린 학생 등 파리에서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민들을 하나씩 표본으로 끌어다 온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손님에게 대하는 표정과 직원에게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다른 빵집 주인은 과장한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특히 빵집에서 새 직원을 구할 때, 머리가 뽀글뽀글한 여자가 와서 직원에 응모를 하는 장면 있죠? 깍쟁이같은 빵집주인이 '저쪽으로 좀 가있으라'며 기분나쁘게 굴지요. 알제리나 모로코 태생으로 보이는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당신 프랑스인이야?'라고 캐물어 보는 장면은 인종차별의 뉘앙스를 띄는 장면으로 사회문제를 집어내려는 모종의 의도가 있는 장면으로 보여요. 산만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다각도로 파리를 담아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실 불법이민과 SDF 등의 파리의 사회문제, 빛나는 역사와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물, 관광객들이 잘 가는 물랑루즈와 에펠탑, 패션의 중심지 등 모든 걸 담아내기는 실로 불가능하죠. 불가능한데, 이 영화는 그 복잡다단한 파리를 다각도의 시선에서 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는거죠. 예를 들어 <아멜리에>는 파리를 지나치게 낭만적인 도시로 그렸습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그건 한낱 환상적인 영화 한 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반면에 <파리>는 엑스트라로 지나가는 역이라 할지라도 '어, 저 사람 나랑 비슷하네'하고 파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영화에요. 뿐만 아니라 <아멜리에>가 팅커벨이 나오는 동화에 가깝다면 <파리>는등장인물의 직업과 계층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전형적인 모습은 결코 아니지만(!)- 파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실례들이에요.

 

둘째, 영화에 나온 배경들

신랑하고 나란히 앉아서 보면서 화면이 바뀌면 스틸켓 잡아놓고 '여기 어디게?'하고 알아맞추기 놀이하면서 아주 재밌게 봤어요.중심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영화에 나온 파리의 배경 설명 나갑니다. 이 놀이 직접 해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부분 스크롤하지 마세요. ^^

 

삐에르와 누나 엘리즈(줄리에뜨 비노쉬)가 사는 곳은 18구 몽마르트르 언덕이에요. 파리는 평평한 땅이라 높은 곳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높은 언덕이 몽마르트르에요. 파리 안에서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재밌는건.. 영화에서 이 세 곳을 동시에 조명하더군요. 몽마르트르사끄레꾀르 사원앞에 레티시아가 남친과 놀러가죠. 이때 롤렁은에펠탑에서 레티시아에게 연신 핸펀을 때립니다. 같은 시간,몽파르나스 타워꼭대기에 올라간 야채장사는 죽은 동료의 뼈가루를 이곳에서 뿌리죠.

롤렁이 파리1대학 교수라는건 영화에서는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배경보니까 알겠더군요. 생미셀과 뤽상부르그역 사이에파리 팡테옹-소르본느 대학(일명 파리1대학)이 있는데, 그곳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찍었네요. 강의실과 도서관 죽이게 멋있지 않습니까? 이 대학에서 언덕배기로 조금 더 올라가면 언덕(?) 정상에 팡테옹 건물이 있어요. 레티시아가 주로 차를 마시고 있던 바는 팡테옹-소르본느 대학을 등지고 섰을 때, 왼편에 있어요. 분수대 바로 앞이죠. 파리 안에 있는 대학들은 캠퍼스가 없이 이렇게 길가에 건물만 덜러덩~ 있습니다. 분수대가 있는 것만도 용치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롤렁이 한 카페에서 짱짱한 페이의 아르비를 소개받고 눈이 번쩍 뜨입니다. 이곳이 어딜까요..빨레 르와얄 정원입니다. 빨레 르와얄, 뤽상부르그, 몽쑤리, 몽쏘 등 도심 속에 이런 고즈넉한 정원이 도사리고 있는게 파리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롤렁의 형, 쟝의 아파트는 어딜까요? 13구에 있는미테랑 국립도서관쪽이에요. 도서관에서 남쪽으로 유리로 마감되어 있는 아파트가 있는데, 억수로 모던합니다. 미테랑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도미니끄 페로의 전시가 이 달 말까지 퐁피두센터에서 열리고 있지요. 저는 쟝의 tete de lit(침대 머리맡에 세운 판대기)가 아주 맘에 들더군요. 쓰읍~

카메룬에서 밀입한 남자가 파리에서 날라온 엽서를 들고 실제와 대조해보는 장소는 줄리에뜨 비노쉬가 출연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퐁네프의 연인들>의 그 퐁네프구요.영화 마지막에 삐에르가 택시를 타고 파리를 한 바퀴 돕니다.18구몽마르트르에서 시작해서나씨옹(Nation)역 근처을 지나바스티유를 지나 -바스티유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Genie de Bastille(제니 드 바스티유)에서 한번 앵글 돌려주고-13구를 살짝 지나 달립니다. 또 빼먹은 장소가 몇 군데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의 첫장면에 흐르는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흐릅니다. 제가 연주한 버젼으로 올려봅니다. 한 5년 동안 피아노를 안 쳤더니 중간에 손가락이 한번 꼬였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


Gnossienne N°1, Eric Sa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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