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한국도 기혼여성앵커의 단독진행!!!
하!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기혼여성의 단독 저녁뉴스 진행을 권고하며 MBC 게시판에 올린 제 글이 적극 반영되었나 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ㅎㅎㅎ
아래는 김주하 앵커가 출산휴가를 받기 전, 항간에 토론이 벌어지고 있을 때, MBC 자유게시판에 기고한 제 글입니다. (2006년 1월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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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임신 5개월의 김주하앵커가 뉴스진행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온라인 기사를 접했다. 천 여 개가 넘는 리플을 보면, '뉴스진행 중에 오바이트라도 하면 어찌하나' '집에가서 태교나 하지' 등 임신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무식한 댓글을 어쩜 그리도 용감하게 달 수 있는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일반적으로 임신 4개월에 접어들면, 입덧은 사라지고 피곤함을 덜 느끼며, 유산의 위험성도 사라져 안정기에 접어드는 때다. 따라서 임신 4개월부터 7개월까지가 임신 전체 기간 중 임산부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때다. 어쨌거나 대응할 가치도 없는 댓글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도 않으련다.
며칠 후, '결정은 김주하씨 본인에게 달렸다'는 MBC의 입장이 실린 기사를 접했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라면 김주하씨의 출산휴가의 시기를 결정하는 사람은 임산부 본인이 아니라 '담당 산부인과 의사'라고 답한다. 물론 이곳에선 이런 일은 기사거리도, 논의거리조차도 되지 않는다.
일련의 상황을 멀리서 보면서 긴 글을 준비했다. 전개될 논점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다행(?)스럽게도 출산률 감소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Eurostat(유럽연합통계국)의 발표에 따르면, 2006년 1월 1일 현재 유럽연합의 출산률이 하락하고 있는데, 한국과 같은 걱정거리를 안고있는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 독일의 출산률은 0.25%로 증가세가 매우 약하며, 이탈리아는 이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출산보다 직업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작년 한 해 유럽여합 최고의 출산률을 기록했다. 2005년 여성 한 명당 1.94명 출산으로 유럽연합 전체의 1.50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유는 출산과 직업을 선택해야하는 기로 앞에서 둘 모두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가족정책을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산률이 위험수준으로 줄어드는 지금, 공인인 김주하씨로 대표되는 임산부의 직장/출산휴가/복직에 대해서 모범적인 대안을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어서, 남녀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의 앵커문화에 대해서 짧게 집고 넘어가 보련다.
1. 직장과 출산/육아를 병행하는 프랑스 산모
필자가 대학을 갓졸업하고 대기업 공채를 보러다닐 때, 단체면접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직장을 다니다 임신을 했다고 합시다. 출산 후 육아와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 '징하다' 싶은 독한 년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출산 후 1주일 후에 출근하겠습니다!"
태어난 아기를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지 한국사회는 무심하다. 비싼 사립대 나와, 비싼 공채비 들여 여성인력을 채용하는 회사도 무심다. 그저 직장여성에게 '일을 할래? 집에서 애를 볼래?'라고 종용할 뿐이다. 애를 낳고 봐줄 사람이 없어 먼 처가집에 맡기는 내 후배 하나는 주말가족이다. 부부는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처가집에 가서 아이를 데려온다하니 기가 막히더라. 둘째 아이? 꿈일 뿐이다. 출산률이 겁나게 줄어드는 지금, 이제 여성 앞에 '왜 애 안 낳아!!!'라며 종주먹을 댄다. 이 무심한 사람들아, 여성은 애 낳는 공장이 아니라네.
10여 년 전 출산률이 저조했던 프랑스가 지금은 유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최고의 출산률을 자랑한다. 왜? 여성들에게 '애국심' 운운하기 때문이 아니고 '직장이냐? 임신이냐?'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도록 정부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결혼한 여성에게 뿐만이 아니라 혼자사는 미혼모에게도 적용된다. 임신 기간 중, 출산 후 산모를 둘러싼 사회의 배려에 대해 시기별로 정리해본다.
1-1. 국가, 직장, 남편, 사회의 보조
직장생활을 하는 임산부는 출산예정일 6주 전부터 출산 후 10주까지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 (임신기간 중 가장 편안하게 느끼고 있을 김주하씨에게 출산휴가를 권유하기는 너무나 이르다.) 출산휴가 첫날을 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회사 상사가 아닌 담당산부인과 의사가 결정한다. 출산휴가는 유급으로 월급의 70%를 받으며, 회사는 그동안 임시직원을 고용한다. 출산휴가 받기 전, 직장생활을 할 때도 야근은 없다. 임산부든 아니든 사장이든 신입이든 유럽에서 퇴근 앞에선 모두가 칼이다.
조산될 우려가 있는 임신 7개월부터 출산 후 8주까지 출산과 관련된 산모의 진료비는 100% 환불된다. 심지어 산통이 오는 산모를 병원으로 급송하는 앰블런스와 택시비까지도 전액 환불된다. 임신 중, 보험국은 산모가 받을 출산장려금을 계산, 출산시 산모에게 약 1백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며, 다달이 약 19만원의 양육보조금을 지급한다.
출산 시 산모의 진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임산부가 아무런 진통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출산을 하도록- 페리듀랄'이라는 일종의 국부마취제를 쓴다. 아이가 나올 것 같다, 싶으면 마취전문의는 페리듀랄를 산모의 등에 주사한다. 페리듀랄 사용에 앞서 산모의 동의가 반드시 따라야하는 건 물론이다.
분만 후 산모는 3~5일간 병원에 머무는데, 역시 100% 보험으로 처리된다 (사립클리닉 제외). 이때 한국과 다른 점은 신생아와 산모에게 요구되는 모든 준비물은 산모가 싸가야 한다는 것. 병원에서는 베냇저고리 하나 거저주지 않는다.
출산 후 10주가 넘어 일을 다시 시작할 때, 아이를 부모에게 맡기거나 탁아소에 맡기거나 보모를 낮시간에 집으로 부르거나 할 수 있다. 부부의 벌이, 아이의 건강문제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한다. 아이가 3살이 되면 유아원에 보내는데, 이때부터 의무교육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씨만 뿌리면 끝? 무슨 소리! 남편들은 임신, 출산,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동참하기를 요구받는다.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산부인과 정기검진, 초음파촬영, 조산원이 하는 교육 등에 남편이 참석하기를 요구하며, 임신에 관련된 지식을 남편과 공유하도록 제안한다. 분만실에 남편이 동행하며, 부인의 해산을 기해 3일간의 법정휴가가 자동으로 주어진다. 출산 후, 보름간의 출산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때 급여는 평소의 70%를 받는다. 출산 후 육아와 가사도 반반 분담한다. 유아원과 탁아소가 낮동안 아이를 봐준다고 해도 배우자의 도움없이 직장과 가사를 동시에 한다는건,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무리다.
퇴근시간이 된 여자직원이 줄 서 있는 고객 앞에서 눈치 하나 보지않고 손 툭~툭~ 털며 일어선다.
"죄송합니다. 전 이만. 유아원에 가서 아이를 데려와야해서요."
애 데리러 간다는데 더이상 잡을 수가 없다. 그 직원의 바톤을 받는 직원이 자리에 대신 앉는다. 근데, 사실 여자직원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이혼한 부부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남자직원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된다.
1-2. 고려할 점들
이곳의 상황을 한국에 그대로 적응하기 전에 반/드/시/ 간과하면 안될 점들이 있다.
첫째, 높은 유산률과 조산률
프랑스 산모에 정부가 휴가, 복직, 장려금, 보조금, 출산진통제 등 이토록 정성을 쏟는 이유는 '직장이냐? 애냐?'의 기로에 선 여성의 고민을 없애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낳은 아이를 탁아소에서 키워준다 해도 임신과 직장을 병행하다보니 유산 및 조산이 높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는 말하자면 '여성님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아이를 낳아주시는데 정부가 이 정도 해드리는건 기본 아니겠습니까?' 식인거지. 이렇게 힘들게 아이를 낳는데 어디 사내/계집애를 가려? 낳아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남녀아 선호가 없다보니 2차 초음파촬영시에 초음파촬영 전문의는 아이의 성별을 알려준다. 아이의 이름과 옷가지 등을 고르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렇듯 유산과 조산의 위험을 안고 직장과 임신/출산/육아를 병행하는 임산부들을 위해 프랑스는 사회 전체가 같이 뛴다. 생명에 대한 경외인지 임산부에 대한 존중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간에 산모에 대한 시선과 대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특별하다.
둘째, 체력의 차이.
섭취하는 음식이 다르다보니 한국과 유럽여성의 체력이 다르다. 실례로 벨기에 산모는 출산 바로 다음 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프랑스 산모는 3~5일간 병원에 머물고 나와 1주일 후면 신생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 산책을 한다. 하지만 한국 산모는 출산 후 5일간 병원에 있다가 나와서 산후조리하는데만 한 달이 간다. 약 100일간은 신생아를 데리고 산보할 엄두를 못낸다.
셋째, 30년과 3년의 차이.
프랑스의 여권운동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여성들도 자신의 섹스에 대해 자유와 독립성을 주장했으며, 지난 한 세대동안 여성에 대한 지위와 사회적 배려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한국은 여성의 자신의 성을 찾기 시작한게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30년의 간극이 있다. 출산장려책을 위한 제도수립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먼/저, 사회전반의 시각이 바뀌어야겠다. 오마이뉴스 기사 밑에 붙었던 댓글을 보고 있자면 산모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에서 그들의 지적수준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2. 남녀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의 앵커문화
프랑스에서는 저녁뉴스의 임신문제로 뉴스진행을 하네마네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고 이전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저녁뉴스 앵커가 임신문제로 출산휴가를 신청할까말까 고민할 여지도 없다. 왜? 여성앵커들이 50대 가까운 중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앵커를 기용했을 때가 기억난다. 중년의 남성앵커 옆에 대학 갓 졸업한 여성앵커가 앉았다. 하지만 '앵커'는 이름일 뿐 그저 '한 송이 꽃'에 지나지 않았다. '방송계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아름다운 그녀는 남성앵커가 뉴스 한 토막을 진행하고나면 옆에서 고개나 끄덕일 뿐이었다. 저녁뉴스앵커로 나와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라면 나도 그 자리에 앉아 할 수 있다. 그녀만큼 얼굴이 받쳐주지 않아서 그렇지. 입을 여나보다 싶으면 남성앵커의 토막멘트에 장단이나 맞추어 "예, 그렇죠. 안타깝네요." 남성앵커의 부름에 대답을 한다해도 꽃은 의미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한 40분 지나면 뉴스는 끝났고, 난 '옆에 저 여자 대체 뭣하러 나온거야?' 갸우뚱~.
이후에 라이벌 방송사에서 '방송의 꽃' 경쟁을 하듯이 백지연 아나운서를 등장시켰고, 빵빵한 학벌과 인맥 때문인지 총명함 때문인지 할 말 하는 앵커다운 앵커의 진면모를 보여줬었다. 지금도 간혹 스틸셧으로 보이는 한국 저녁뉴스 앵커들을 보면 남자는 40대 이상의 중년이요, 옆에 다소곳이 앉은 여성앵커는 서른을 넘기지 않은 듯 젊다.
프랑스 TV채널의 저녁뉴스를 맡는 앵커를 보면, 남자앵커와 여자앵커가 있는데 늘 독자진행을 한다. 남성앵커가 사회를 맡는 날이 있고, 여성앵커가 사회를 맡는 날이 있다. 남녀앵커가 동시진행은 하는 경우는 없다. 이들 모두는 40~50줄은 된 듯한 중년들이다. 실례로 요며칠 저녁뉴스 진행자들은 TF1과 France 2 양쪽 채널 다 여성이다. 다들 지긋한 연륜을 자랑한다. '앵커의 여왕'으로 불리는 TF1의 뉴스진행자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자연스레 앉았다. 듣기 좋게 가라앉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녀의 뉴스진행은 매우 안정적이다. 폭력, 살인, 화재 등을 전하는 뉴스마저도 푸근하게 들린다면 억지가 지나치려나?
자식이 있어도 이미 장성했을 이 나이 정도 되면 폐경기가 되서 임신때문에 뉴스진행을 더 하네 못하네 고민할 여지도 없다. 한국에는 중년 남성앵커가 장기고정출연을 하는데, 왜 이런 멋진 중년 여성앵커는 없는걸까? 옆에 기용되는 여성앵커는 왜 젊은 여자여야할까? 왜 옆에 앉은 남성앵커보다 어려야 하는걸까? 중년의 여성앵커가 독자적으로 능숙하게 진행하는 한국 저녁뉴스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