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수컷들의 Swan Lake (Matthew Bourne)
어릴 때 아빠가 발레음악 카세트를 선물해준 적이 있었다. 앞뒷면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지 인형>이 각각 들어있었다. 그 테잎을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하여간 늘어지도록 들었던 것 같다. 그후 언제인지는 기억도 안 나는데, 영화를 봤는지 공연 녹화물을 봤는지 어쨌거나 연약한 여자들이 나와서 발가락 또각또각 세우면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를 봤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97년 겨울, 런던에서 머물 때, 수컷 백조들이 춤을 추는 <백조의 호수>를 보았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그대로 둔 채 매튜 번이 안무를 맡으면서 고전발레가 현대발레로 훼까닥~ 바뀌면서 줄거리도 와장창~ 바뀌어 있었다. 그 환골탈태한 모습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다. 오데뜨에게 반해야 할 왕자가 수컷백조에게 연정을 느끼고 질투를 느끼는 <백조의 호수> '호모섹슈얼 버젼'이라고나 할까. 호모섹슈얼함에 충격을 받은게 아니고, 원본과 재해석본의 차이와 완성도에 엄청나게 놀랐었다.
이 발레가 미국, 일본, 유럽 등을 순회하고나서 -한국에도 들른 걸로 아는데- 2005년 11월, 프랑스에 드디어 첫상륙을 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1시간이면 되는 것을.. 그 먼 길을 반대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아 참으로 오래도 걸렸구나. 11월 24일자로 예약을 끊어놓고 남편을 데려갔다.
난 극장(theatre)에서 나는 냄새가 좋다. 영화관과는 다른. 특히나 유럽의 극장들은 워낙 오래되서 계단 하나하나 손잡이 하나하나가 숨을 쉬는 것 같다. 빨간 카페트가 깔린 계단을 돌아올라 자리를 찾고, 거기서 무대를 내려다 보고, 극이 시작되면 쌍안경을 꺼내는 그 모든 것이 좋다. 자리에 앉아 극장 내부를 돌아보며 큰 숨을 들여쉬면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더구나 이번엔 런던의 거의 모든 극장을 쓸고 다니던 그 겨울의 기억이 파리의 극장 위에 오버랩 됐다. 여기가 런던인가 파리인가.. 혼동이 될 정도로.
"사실 나 이거 8년 전에 봤어. 근데 작품이 너무 좋아서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지나간 기억을 그렇게 잠시 꺼내어 남편과 공유해보려고 노력한다.
<백조의 호수> 오리지날 버전은 12월부터 바스띠유 오페라 극장에서 올라간다. '그것도 보러갈까?' 했다가 나중에 아이와 함께 봐야지.. 하는 마음에 공연관람비를 DVD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이가 그 DVD를 닳도록 본다면 기분이 참 묘할 것 같다.
* 매튜 번의 <백조의 호수> 공연정보 *
2005년 11월 16일 ~ 2006년 1월 8일
모가도르 극장(Theatre Mogador)www.mogado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