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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참고문헌 하나없는 소설책만 있다

에꼴로 2011. 3. 18. 18:33
나는 비소설류를 많이 읽는 편인데, 한국 저자가 쓴 비소설들을 보면 하나같이 참고문헌이 없다. 참고문헌이 없으니 이건 순수창작물이다. 자서전이 아니라면 -과장해서- 이건 소설이다.

프랑스에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따고 살면서 그리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는데, 프랑스에선, 아니 미국이든 영국이든 내가 접한 어떤 원서든간에 어떤 분야에서 책이 한 권 나오면 그 책 뒷부분에 20~30개씩 되는 참고문헌이 실리는건 보통이다. 참고문헌 목록이 페이지로 수 페이지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반면에 한국 독자들로부터 추천받은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소포 받을 일이 있을 때 가끔 받아보곤 하는데 내용은 둘째치고 참고문헌 하나 없는 이 책들이 왜 이리 추앙을 받는 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도 (한국에선) 유명하고, 책도 많이 팔려나가다못해 품절까지 된다. 신기한 일이다. 참고문헌 하나 없는 책이 사회에서 그토록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

참고문헌이 하나 없으니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었는 지, 귀동냥으로 얻었는지, 그 정보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저자의 추측인지 주장인지 억측인지 상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불확실들을 확고한 정보로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저 예일대에서 학위 땄어요'하면 학위도 보지않고 갤러리스트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는 사회풍토에서 가능하다. '이 책 제가 쓴거에요'가 중요할 뿐 '이런이런 책들을 참고로 했습니다'는 관심없는 분위기에서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자.
1. 우석훈의 <음식국부론>


한국에서 하도 잘 나가다못해 품절까지 된 책인데, 이 책 찾는 독자들이 아직도 있을 정도다. 책 갖고 계신 분 한번 보라. 이 책도 참고문헌이 하/나/도/ 없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따셨다는데, 어찌하여 참고문헌 하나 남기지 않는 대실수 범하셨는 지 미스테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국에서 책을 쓸 땐 참고문헌 따윈 필요없어~'라는걸 충분히 간파하셨나보다. 저자가 제시하는 참고자료는 단 하나. 자기 자신이 한국의 아토피 아동에 대해 조사한 자료, 그 하나 밖에는 없다. 눈물겹다.

2. 김수현의 책 2권 : <바른 식생활이 나를 바꾼다><밥상을 다시 차리자 2>


책도 많이 내시고 (또한 많이 팔리고), 인터넷에 까페도 운영하시고, 강의도 많이 다니시고, 식생활 상담도 많이 받으시는 걸로 안다. 이 분의 생각에 많이 동의하고, 좋은 취지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사실 이 분을 예로 들기 많이 주저됐다. 비난이 될까봐서다. 하지만 한국의 출판문화가 바뀌고, 한국 독자들의 수준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책과 저자를 예로 드는게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선을 위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수현씨가 책을 많이 냈는데, 내 수중에 있는 4권에 한결같이 참고문헌이 없는걸 봐서 나머지 다른 책들도 참고문헌이 없을꺼라고 확신한다. 요리책이라면 몰라도 식생활과 건강에 관한 책을 쓰면 참고문헌 제시가 반드시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제로다.

두 저자의 먹거리에 대한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그럼, 그들이 간과한 참고문헌은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화학첨가물이 건강에 나쁘다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해를 끼쳤는지, 그 조사가 발표된 문헌이 자세하게 표기됐어야 한다. 우유/달걀/고기가 몸에 해롭다면 그 역시 어디서 어떤 실험을 했더니 어떠하더라...라고 문헌에 대한 자세한 기재가 따라야한다. 계절음식과 비계절음식의 영양가의 차가 있다면 '언제 누가 실험한 또는 발표한 논문/전문잡지/책에 의하면'이라고 근거를 제시해야한다. 이렇게 되면 독자는 저자가 과연 어떤 (신빙성있는) 출처의 자료를 바탕으로 쓴 저작물인 지를 알 수가 있다.

반대로, 모 식품회사에서 (찌라시 형태로) 배포하는 영양가 정보를 참고자료로 썼다거나,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에 올라간 정보를 바탕으로 썼다면 저자가 어떤 좋은 소리를 했든지간에 그 책은 읽을 가치도, 쳐다볼 필요도 없다!

3. <엄마와 함께 하는 유태인 교육, 아빠와 함께 하는 몬테소리 교육>, 문미화, 민병훈 엮음, 아이디북


유태인의 교육도, 몬테소리 교육방침도 분명히 자기가 지어낸 얘기가 아닐진대 어디선가 자료를 대폭 카피해왔을텐데 참고자료 제시가 하나도 없다!


참고도서가 없으면 거짓말을 써도 모른다. 자료제시가 없고, 어디가 개인적인 추측과 주장이고, 어디가 객관적인 사실인지 경계가 없다. 근데 불행히도 한국엔 이런 문헌 제시 하나 없는 소설같은 비소설류가 거짓말처럼 판을 친다. 한국의 그 많은 대학들 뭐하는가? 졸업할 때까지 리포트, 논문 쓰는 법도 제대로 안 가르치는건 아닌 지?

이렇게 쉽게 쉽게 책을 낸다면 나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면서 검색해서 책 한 권 뚝딱 내겠다. 웃기는건 책을 그렇게 만드는게 아니라 그렇게 낸 책이 인기리에 팔려나가는 풍토다. 누구의 책을, 누구의 연구를 참고했는 지는 왕무시하고,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결과물에만 시선을 두는 풍토다. 차윤정의 <나무의 죽음> <신갈나무 투쟁기> 등도 한국 독자에게 매우 잘 알려진 추천도서이다. 하지만 역시 차윤정씨도 참고도서 목록 하/나/도/ 싣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국에선 추천도서로 널리 퍼지고 있다는게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럼 지금이라도 증보판에 참고문헌 목록을, 아니 참고문헌이라는 구실로 그럴싸한 책들 모아다가 수 십 개의 책 제목과 출판사, 출판연도 적어 부록으로 달기만 하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 본문 내에 어떤 사실을 제시할 때마다 주석으로 자료출처가 상세하게 따라나와야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참고문헌으로 제시되는 자료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자료는 신빙성이 있는 자료로 치지 않는다. 루머가 아닌 이상.

예를 들어보라고? 좋아!

1. <100년동안의 거짓말>, 랜덜 피츠제럴드, 시공사 (2010년)



참고자료 목록이 323~349pp.에 이른다.

2.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시공사 (2010년) - 참고로, 이 책이 원어로 출간된 건 1993년이다.

상세하게도 주석은 353~406pp, 인용한 참고문헌의 목록은 407~437pp에 이른다.

이번엔 프랑스에서 발간된 책의 예를 들어보자.
3.  <Vaccinations, les verites indesirables> (백신, 달갑지않은 진실들), Michel Georget, Edition Dangles



참고한 문헌이 100가지가 된다. 언제 누가 어디서 출판한 어느 자료의 몇 페이지를 인용했는 지 적혀있다. 이건 논문을 쓸 때나 책을 쓸 때나 기본이다, 기본.


책 자체도 두껍지만 제시하는 문헌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책이 커서 참고문헌이 많은건 아니다. 얇고 손바닥만한 책도 참고문헌이 최소한 5개는 된다. 책들은 두꺼워도 참고문헌 하나 없는 한국 저자들의 책들과 상당히 비교된다. 내 나라 한국을 하릴없이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는게 아니라 한국의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지식인다운 저작물을 생산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한국의 출판문화가 좀더 튼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판의 잣대를 들고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한국에선 참고자료같은 거 필요없어. 다 내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면 다들 그런 줄 알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책을 내지 말란 말이다.